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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텃밭’이라는 수식어가 수십 년째 붙어 다니는 영천 지역에서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낯설지 않은, 그러나 결코 낯익어서는 안 될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광역의원 선거에서 가 지역구(서부·완산·남부동, 금호읍·청통·신녕·화산·대창·북안면)는 물론이고, 나 지역구(중앙·동부동, 고경·임고·자양·화남·화북면) 역시 국민의힘 후보(외에 민주당이나 무소속 후보가 없어 ‘국민의힘 공천=당선’이라는 무투표 당선)가 공천 확정과 동시에 사실상 당선증을 손에 쥐는 구도가 굳어지고 있다.![]()
ⓒ 경북동부신문
공직선거법 제275조에 따라 무투표 당선이 확정되면 선거운동도, 선거공보도, 후보 검증도 없다. 유권자들은 지지 혹은 반대의 의사를 표현할 최소한의 권리조차 박탈당한다.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불러온 지방자치가 뿌리도 내리기 전에 말라붙는 형국이다.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에서 복당 카드와 출마 지역구 변경이라는 고육지책을 동원해 일단 후보 자리는 채웠다. 숫자상으로는 완성처럼 보이지만, 지역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선은 냉혹하다.
“국민의힘은 영천을 너무 오래 텃밭으로만 봤어요.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보니 인재를 키우는 데 투자하지 않은 거죠. 이번에도 탈당한 사람을 복당시키거나 경북도당 공천 신청과 선관위 예비 등록을 따로 신청해 예비후보자 조차 황당하게 만들며 지역구 교통정리로 간신히 숫자 맞춘 게 그 증거 아닙니까.”
실제 국민의힘은 보수 텃밭의 강점을 살리지 못한 채 2018년과 2022년 연이은 지방선거에서 시장직을 무소속에 내줬다. 또 2018년에는 민주당 시의원이 비례를 포함해 3명이나 당선됐다. ‘단색 보수’라는 그림은 균열이 시작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정치 신인을 발굴하고 키우는 시스템 구축보다 선거철 임기응변에 기대왔다. 세대교체 흐름에 제때 반응하지 못하고 중앙 정치의 소용돌이에 결집력마저 약해지는 사이, 후보군은 점점 얇아졌다.
수 십년된 지역의 민주당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경쟁은 커녕 광역의원 선거에서 두 지역구 모두 후보를 내지 못할 처지이고, 기초의원 선거에 후보 정원을 못 채우면서 4개 지역구 중 라 지역구는 후보 공백이 유력하다. 즉 “사람(인재)이 없다”는 말이다. 선거비용 보전 기준(득표율 15% 이상 전액, 10% 이상 절반)을 넘기지 못할 것을 우려해 나설 사람이 없다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지역 정치권의 평가는 싸늘하다. “선거만 끝나면 ‘여기는 보수 텃밭이라 민주당은 아예 안 찍어 준다’는 화풀이만 해댑니다. 그런데 평소에 지역에, 시민들에게 뿌리를 내리기 위해 한발 한발 정치나 행정 영역에서 견제와 감시 역할을 제대로 했나요? 스스로 지역민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면서 지역민이 외면한다고 탓하는 건 순서가 안 맞죠.” 곱지 않은 지역 정서 탓에 입당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 평소의 견제 역할 부재, 그로 인한 존재감 약화와 젊은 세대 흡수 실패.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면 ‘후보 기근’은 이번 선거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지금 지역의 정치 풍경은 ‘보수적 안일함’과 다른 한쪽의 ‘진보적 열패감’이 동시에 빚어낸 합작품이다. 구조적 인재풀의 고갈, 신인 양성 시스템의 부재라는 문제는 양당이 공유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 몫이다.
지역 정치권 일각에서는 긴 안목의 정치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선거 때만 후보 구하러 다닐 게 아니라 4년 내내 지역에서 사람을 키워야죠. 당장의 당선 가능성만 보지 말고 10년 뒤를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정당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아닙니까.”
견제와 감시가 사라진 권력은 예외 없이 부패한다. 이는 원론이 아니라 역사가 반복해서 확인해온 사실이다. 민주당이 ‘당선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후보를 포기하는 순간, 그것은 전략의 실패가 아니라 민주주의 포기 선언에 가깝다.
영천의 유권자들은 그래도 이미 여러 차례 ‘무소속·민주당’을 선택 해온 진정한 민주주의 유권자들이다.
6·3 지방선거가 지역주의에 기반한 일당 독점 구도를 흔드는 계기가 되려면, 먼저 두 정당이 스스로 존재 이유를 되물어야 한다. 공당의 존재 이유는 유권자 앞에 후보를 세우는 것이다.
최병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