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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고깔을 쓴다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입력 2026.10.21 10:58 수정 2026.10.21 11:01

한 관 식 작가

ⓒ 경북동부신문
말똥구리(39)
둥근 문고리의 감각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손안에서 얼얼하게 남아있었다. 그만큼 넘어설 수없는 경계를 향해 약진(躍進)했고, 만돌은 죽을 각오로 방문을 닫았다. 왠지 방문 고리를 당겨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해졌다. 둘만의 공간이었고, 누구에게도 들키면 안 된다는 금기시(禁忌視)의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직감했다. 혜윰은 고즈넉한 달빛 줄기에 등잔불이 없어도 윤곽이 요소요소 드러나 보였다. 얇은 목단이불 한 겹으로 감싼 조롱 박 몸매였다.
“네가 축시에 부름을 받은 상상이, 이 상상이 맞느냐?”
“틀리지 않습니다. 혜윰아씨.”
“저녁나절에 문간채를 기웃거렸는데 보이지 않았다. 어디 출타했다 왔느냐?”
“두마폭포에서 정갈하게 몸을 씻고 왔습니다.”
“춥지 않더냐?”
“여왕벌 한 마리, 세상 꽃을 뒤로하고 선택해주셨는데 어찌 한가하게 가벼움으로 맞이하겠나이까. 머리끄덩이가 잡아채는 추위 앞에서도 열렬히 뜨거워지겠습니다.”
“보기보다 청산유수구나. 내 품속에 사내는 네가 처음이다. 이 밤을 분단장(粉丹粧)하듯, 잘 몰고 갈 수 있겠는가?” 
창호지를 뚫고 들어온 달빛이 우람하게 서있는 만돌의 등 뒤에 조롱조롱 매달렸다. 한번쯤은 주춤 망설였지만 이내 알몸이 되었다. 단단하고 빈틈이 없는 사내의 알몸이 방안 가득 폭설처럼 쌓여갔다. 숨을 쉬기도 뭣하고, 침을 삼키기도 뭣한 무게가 서서히 혜윰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불 한 겹 안에서 알몸은 작은 나비 날갯짓으로 파닥거리고, 옹골차게 허락받은 발소리는 마침내 멈추어 열개의 손가락으로 뒤지기 시작했다. 목단 이불은 힘없이 구석으로 나동그라졌다. 서로의 알몸에서 불이 켜졌고, 한 움큼으로 품은 만돌의 가슴은 넉넉했다. 
“약조할 것이 있다.”
혜윰은 뜨거운 입김으로 말했다.
“따르겠습니다.”
“언젠가 될지 모르겠지만 혹여 연분(緣分)이 나타나면 보내줄 수 있겠나? 우린 정분(情分) 이상은 어려울 터. 그 약조의 확답을 앞당겨야 하는데 내가 깜빡해버렸다. 이 시점에서 약간 이상하지만 만돌의 대답을 듣고 싶다. 대답해주겠나?”
“물론입죠. 지는 아씨를 안아보는 것만으로 소원성취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아씨의 걸림돌이 아니라 든든한 그림자라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만돌의 약조는 왠지 믿음이 간다. 그러면 마음껏 날 다루어도 좋다. 양반과 종이기 전에 지금은 수컷과 암컷이다. 푸른 들판을 누비는 곰내제 야생마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덤벼라. 짝짓기로 누운 풀들은 더욱 무성하게 자라날 것이다.”
만지작거리는 것을 뛰어넘어 사방으로 바람이 걸어오듯 만돌의 전력질주는 쪼개고, 다듬고, 헐도록, 와락와락 넘쳐났다. 혜윰은 신음을 간신히 참으면서, 갓 피어난 한 꼭지로 허락한 몸뚱어리를 기억하기위해 수시로 만돌의 구석구석을 쓰다듬었다. 자신의 허연 엉덩이를 두드리는 기막힌 디딜방아처럼 굵은 나무 한 끝에 공이를 박아, 방아확에 곡식을 찧는 힘은 누구 못지않게 최상이었다. 몇 번인가 아득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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