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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문화유산 재발견] 영천역사박물관이 영천의 국어학자 바랄 정희준의 1937년 시집 『흐린 날의 고민』을 찾아왔다.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입력 2026.10.21 11:15 수정 2026.10.21 11:19

남애경 본보 논설위원

국내 최초 지역 역사박물관으로 등록된 영천역사박물관은 영천의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다룬 유물과 전시물이 배치되어 있는 전시, 교육 전문 박물관이다. 영천역사박물관 설립자인 지봉 스님은 영천 지역 역사에 초점을 두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현재 4만여 점의 지역 역사 중심의 문화유산을 수집해 연구하고 있다. 
영천역사박물관의 대표 소장유물로 세계 최초 상업용 일간신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민간인쇄조보(521호 등재) 등 지역의 유적과 유물을 통해 영천의 전통과 생활상을 알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본보는 영천역사박물관과 함께 위대한 지역문화유산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 경북동부신문
ⓒ 경북동부신문
정희준은 1914년 5월 11일 임고면 선원리에서 태어난 국어학자로 알려져 있다. 

호는 ‘바랄’이다. 그가 영천 임고 선원리에서 만든 『조선고어사전』 165쪽에서 ‘바’은 ‘바다’의 옛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자신이 만든 사전에서 호를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그는 홍익대학교 설립 초기에 국문과 교수를 지냈다. 『조선고어사전』 서문에 1948년 홍익대 설립 초기 국문학 교수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1950년 12월 2일자 김성칠의 일기『역사 앞에서』에 월북 관한 기록이 짧게 나온다. 같은 영천 출신 역사학자의 일기라는 점이 흥미롭다. 
시인으로서 흔적 또한 가지고 있는데 『삼사문학』동인이다. 『삼사문학』은 1934년 9월 창간되어 1935년 12월 통권 6호로 종간된 연희전문 학생 중심의 동인지이고, 정희준은 신백수·이시우·정현웅·조풍연 등과 함께 창단 멤버였다. 동인 대부분이 초현실주의·모더니즘 경향이었던 것과 달리 1집의 정희준 「흐린날의 고민」과 「찾는 밤」은 현실 의식이 두드러진 작품으로 분류되며, 1집 이후로는 『삼사문학』에 작품을 싣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37년 발행된 시집으로『흐린 날의 고민』이 있다. 사회개혁적 사고와 당시로선 파격적인 감각적 언어가 특징으로 평가된다. 2005년 8월 12일 영남일보가 ‘영천출신 월북시인 정희준 선생 시집 첫 발견’으로 보도했고, 지역의 한 국어학자가 대구 고서점에서 찾아낸 것이다.
기타 저술로 논문인「이조시대의 국문운동」, 수필로는「가장 오랜 토끼 전설」「말을 말하는 이언」「에카르트와 한글」등이 확인됩니다. 
『조선고어사전』은 서지 사항은 B6 크기로 작은 책 정도로 512면이다. 1949년 동방문화사 간행이며, 표지 제목은 ‘옛말옛일 이두옛책 조선고어사전’으로 서문은 정열모가 썼습니다. 
집필 경위가 영천과 직결됩니다. 1947년 3월 1일 영천 임고 선원리에서 탈고되어 1949년 인쇄되었고, 출판이 늦어진 데는 1947년 5월 8일 정희준 관련 사건으로 부친이 고초를 겪은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는 1948년 6월 5일자 교정 후기에서 청주 집에 칩거한 일과 쉽게 인쇄하지 못한 사정을 적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사전을 방종현의『고어재료사전』, 정태진·김병제의『조선고어방언사전』, 이상춘의『조선 옛말사전』과 함께 광복 후 고전교육을 위해 쏟아져 나온 초기 사서류의 하나로 평가합니다. 또 1955년 국어학자 유창균이 초판 체재를 유지한 채 어휘를 더해『고어사전』으로 증보 재판했다는 점은, 저자 월북 이후에도 학계가 이 사전을 계속 활용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는 자료이다. 
디지털영천문화대전은 조선어학회『조선말 큰 사전』편찬위원으로 참여한 것으로 보이는데 국가기록원 자료에 따르면 조선어학회 수난(1942) 때까지 풀이와 원고 작성을 맡은 사람은 이극로, 이윤재, 한징, 이중화, 정인승, 권승욱, 권덕규, 정태진 등으로, 여기에 정희준의 이름은 없다. 따라서 참여 시기는 해방 후 재개 단계였을 가능성이 높다. 
정희준은 1930년대 모더니즘 동인지에서 현실 의식 계열 시를 쓴 시인이자, 해방 직후 고향 영천에서 초기 고어사전을 완성한 국어학자이다. 그의 가치는 정치 행적보다 “영천에서 집필된 국어사 자료”와 ”영천을 노래한 근대시”라는 두 축에 있다, 이 두 축은 이미 문헌으로 꽤 단단히 입증됩니다. 반면 조선어학회 『조선말 큰 사전』 참여 역할과 월북 전후 행적에 대한 공백 상당 부분을 빠르게 메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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