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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밥 한 번 먹자’고 말해 놓고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입력 2026.10.21 11:21 수정 2026.10.21 11:22

라인선 영천시니어클럽관장

ⓒ 경북동부신문
바람 끝에 선선함이 묻어나고 나뭇잎의 빛깔이 조금씩 달라지는 계절, 가을이다. 
가을은 흔히 사색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유독 가을을 좋아하는 나는 이 계절이 오면 평소보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바쁘게 지나온 하루를 돌아보기도 하고, 오래전 기억 속에 머물러 있던 사람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살면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한때는 자주 만나고 매일같이 안부를 나누던 사람도 어느 순간 연락이 뜸해지고, 그렇게 서로의 일상에서 조금씩 멀어지기도 한다. 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다 문득 그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잘 지내고 있을까.’ ‘그러고 보니 연락한 지가 참 오래됐네.’
그렇게 기억 한편에 떠올려두었던 사람이 어느 날 뜻밖의 순간 눈앞에 나타날 때가 있다. 왁자지껄한 시장 한구석에서, 혹은 바쁘게 걷던 길거리에서 우연히 눈이 마주친다. 
“어머, 정말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어?”
어떻게 지냈는지, 가족들은 평안한지 짧은 안부를 나누다 보면 찰나의 만남이 금세 아쉬워진다. 그리고 헤어질 무렵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 익숙한 한마디가 흘러나온다.
“우리 조만간 밥 한 번 먹자.”
손을 흔들고 돌아서며 마음 한구석이 조금 찌릿해진다. 반가움 뒤로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연락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살았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연락할 시간조차 없을 만큼 바빴던 걸까. 아니면 바쁘다는 핑계로 소중한 사람을 자꾸 삶의 순번 뒤로 미뤄두었던 걸까.
매일의 일상은 늘 분주하고 할 일은 끊이지 않는다. 오늘 못 한 일은 내일로, 내일 못 한 일은 그다음 날로 밀리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한때 매일같이 웃고 이야기하던 사람도 그렇게 기억 속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조만간 연락해야지.’
마음만 먹고 미루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날 또다시 그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
“그동안 왜 이렇게 연락이 없었어?”
웃으며 건네는 말이지만, 어쩌면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그리 바빠 밥 한 끼 함께 나눌 시간조차 내지 못했을까.’
신기하게도 바쁜 일상 속에서 그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는 짧은 순간만큼은, 그토록 무겁게 느껴지던 삶의 무게가 별것 아닌 것처럼 가벼워지곤 한다.
그래서 다시 말한다.
“이번엔 진짜 밥 한 번 먹자.”
왠지 미안한 마음, 이대로 아쉽게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 오랜 시간 묻어두었던 다정함도 그 말 안에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은 참 묘하다. 빈말이라 하기에는 온기가 담겨 있고, 약속이라 하기에는 너무 쉽게 잊힌다.
어쩌면 우리는 그 말을 할 때만큼은 진심으로 만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 바빠지고, ‘조만간’이라는 말 뒤에 약속을 미뤄둔 채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어지는 데 꼭 대단한 오해나 거창한 사건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연락 한 번을 내일로 미루고, 만남 한 번을 다음으로 미루다 보면 어느새 서로의 일상에서 서로의 자리가 희미해진다.
물론 모든 ‘밥 한 번 먹자’가 실제 약속이 될 필요는 없다. 모든 인연을 다 챙기며 살 수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며 마음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한 번쯤 ‘조만간’을 끝내보면 어떨까.
“언제 한번 보자”는 빈말 대신 휴대폰을 열어 그 사람의 이름을 한 번 찾아보고 이렇게 안부를 건네보는 것이다.
“잘 지내지? 문득 네가 생각나네. 이번 주에 시간 괜찮은 날 있어? 밥 한 번 먹자.”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미뤄두었던 것은 밥 한 끼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다시 마주 앉을 시간이었는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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