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교육칼럼]금호강변 물수제비

경북동부신문 기자 입력 2015.06.11 09:14 수정 2015.07.02 09:14

김수자 교육학 박사,부산동삼중학교장

ⓒ 경북동부신문
수면 위의 돌이 가라앉기 전에 얼마나 튀기는가를 겨루던 것이 물수제비 놀이다. 돌멩이와 강물이 준비물이 되고 놀이를 통해 집중력을 길러주는 탐구활동이었다. 작한 돌을 골라야하고 물의 흐름을 관찰하여 돌이 날아가는 모양을 궁리할 수밖에 없는 총체적 사고가 작동하는데 이는 금호강이 주는 여름날 오후의 아름다운 과학 선물세트였다. 돌의 모양과, 돌이 물에 닿을 때 입사각, 초당 돌의 회전 수, 수면의 잔잔한 정도 등의 물리학적 비밀이 숨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어린 시절 무작정 즐겼던 그 편하고도 건강한 자연시간은 의도적으로 마련하기에 쉽지 않는 경험중심 교육과정의 좋은 장면이었다. 열 번만 튀기면 집에 가야지 하다가 해가 진날도 많았는데 그 때마다 꾸중이 동반되었다. 그 시절에는 일상사에서 교육적 의미를 부여할 만큼 여유로운 교육환경이 아니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주인공 아버지가 보여주는 계획된 진지함의 교육환경은 금호강변의 우리들에게는 낭만적 사치였으리라. 하지만 흐르는 금호강은 조약돌을 만들고 물수제비를 튀기면서 우리들의 키를 키웠으며. 금호강변의 저녁놀은 겨우 두 번 튀다가 어이없이 가라앉는 순간도 즐길 줄 아는 아이로 성장시켰다. 금호강변에서 자라던 숱한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고 각자의 역할을 물수제비 튀기듯이 해내고 있다. 서울 외의 사람은 다 지방 사람이라 불리는데 우리는 그냥 영천사람이라 불리고 싶다 . 긴(永)내(川)의 사람이다. 강변에서 물수제비 놀이를 즐기던 사람들 말이다. 미끄러지는 듯 경쾌하게 돌멩이는 튀어 오르고 꿈꾸듯 번져나가 동그라미를 만들어 내는 물결 무늬는 둥글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은 우리들의 꿈이었다. 하지만 고향 밖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숨죽이며 응시했던 그 돌멩이가 속절없이 빠져버리는 순간이 더 많았다. 그 때마다 물수제비의 연습과 훈련으로 다져진 우리들의 옹골찬 시선은 다시 무엇인가를 시작하게 해 주었다. 잘 산다는 것은 잘 나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재대로 호흡하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순간조차 음미하는 법을 연습한 자들에게나 가능한 아름다운 여유이다. 잘 산다는 것은, 고향을 지키고 있든 고향으로 돌아올 희망을 안고 있든 고향에서 배우고 연습한 그 삶의 방식을 제대로 행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긴(永) 강(川)을 살아내는 고단한 기술이다. 여론 조작과 인기 신드롬 그리고 대중의 마취를 아프게 저항하면서 여름바람의 싱그러움에 민감할 수 있는 거듭된 연습이다. 세상이 만들어낸 숱한 우상들을 힘겹게 거부하면서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거듭하는 ‘수면 위의 돌멩이 튀어 오름’이다. 금호강의 여름 오후 물수제비 제대로 한번 튀기고 싶다.


저작권자 경북동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