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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동부신문 |
“나 성공했어! 축하해 줘!”
느닷없이 불려나와 앉자마자 말했다. 내 반응을 기다리기도 전에 친구는 맥주를 시켰다. 축배를 들어야 한다며.
이혼 했단다. 영문을 몰라 기색을 살피니 화색마저 발그레 돌아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녀의 인생을 위해서라면 백 번은 축하해줘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본능적 보수의 잣대가 발동돼 머뭇거리고 있는데 그녀가 깔끔하게 정리를 했다. “사실 나도 이혼녀가 된 게 이렇게 홀가분해도 되나 싶긴 한데, 일단 수십 년 지고 다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니 축배 정도는 들어도 되지 않을까?”
그녀가 살아온 세월을 가까이서 지켜본 나였기에 친구는 그동안 바닥에 눌러두었던 얘기들까지 오래도록 했다. 눈물이 없다고 울지 않은 것은 아니다. 통곡보다 절절한 인내로 살아온 그녀였다. 어떤 날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방탕한 남자와 살아가기’라는 책은 없느냐고 물어왔었다.
작은 어려움도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고 쾌락으로 풀어가는 남편을 용케도 잘 참아냈다. 그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었던 그녀의 철학 하나, 그것은 오직 ‘가정’이라는 형식의 온전함을 지키는 것이었다. 때로는 그 미련한 가치가 네 인생보다 무슨 큰 의미냐며 오히려 내가 이혼을 권유하기도 했었다.
그녀의 굳건하던 철학을 깬 사건이 또 일어났던 모양이다. 남편이 도박으로 사채업자에 쫓겨 집을 나가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 벌써 세 번째였다. 매 번 그 빚을 고스란히 떠안았던 그녀였다.
대학생인 남매조차 제발 더 이상 아빠를 참아주지 말라고 울며 호소했단다. 이혼을 하지 않으면 집에 차압딱지가 붙을 상황에 이르자 그녀는 가정을 지킨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단다. 그것은 그토록 끌어안고자 애썼으나 너덜거리고 남루하기만 한 가치를 버리는 것이었단다.
그것이 자신과 아이들이나마 지키는 길이었단다. “내려놓고 나니 이토록 홀가분한 것을... 친구야! 나는 이제야 더 이상 훈장도 뭣도 아닌 그 멍에를 벗는데 성공한 거 같아!” 그녀는 씩씩하게 술잔을 들었다. 나도 그녀의 잔에 진심으로 건배했다.
누가 이혼을 실패라고 하는가? 사람들은 더러 이혼에 성공하기도 하고 끝까지 사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결혼을 하는데 성공한 사람도 있고, 결혼을 안 하는데 성공한 사람도 있다. 결혼을 했지만 덤덤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마지못해 사는 사람도 있다. 결혼을 하고 싶지만 결혼을 하지 못한 사람도, 결혼은 안 하고 연애만 하는데 성공한 사람도 있다. 다만 선택일 뿐이다. 인생이 늘 그렇듯.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많은 것을 꿈꾼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가슴에 이는 깊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 행복은 남에게 보여 지는 것이 아닌, 내 가슴이 내는 진정한 울림에 귀를 기울일 때 들리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