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표의 방향
모든 사람들은 표현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멋있고 맛있는 방향의 느낌은 같을 것이다.
함께 느껴볼 수 있고, 와 닿는 느낌이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행복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즐거운 마음으로 각인 할 수 있지 않을까.
탄광 막장에서 석탄을 캐고 있는 광부의 광활한 느낌과, 문화예술의 변화와 조화로움을 연출해내는 선임 연구원들의 느낌, 등은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개발하여 충족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도마 위에 올려져있는 고기처럼 가슴과 마음에 찬바람이 쏟아지고 있고, 사회가 냉정하고, 불안정하다면 그 위에 삶을 유지하는 서민들은 얼마나 비참할까.
4,11총선이 막을 내린지 벌써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갔는데도 집안싸움으로, 서민들의 민생은 행복인지, 불행인지, 눈도장도 찍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 같다.
서민들의 민생과 복지, 부터 챙길 것이다. 라고 저마다 이야기꽃을 피우더니 찬 서리를 맞았는지, 연일 밥 그릇싸움으로 시끄러울 뿐 아까운 시간이 정처 없이 흘러가고 있다. 불필요한 소유를 잠식하려는 집착으로 이끌어내 오직, 정복이라는 글자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한쪽에서는 광우병 소동으로 시끌시끌하고, 수 없이 외쳐오던 부정부패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지 못하고, 집안싸움으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세력들의 정체성을 바라보는 서민들은 어떠한 느낌으로 표현하고 있을까.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사회가 일등국민들이 살아가는 사회일 것이다. 함부로 뱉어낸 말의 씨앗들을 어떻게 어떠한 방법으로 주어 담을 수 있는지. 부정으로 얼룩진 그들에게 순수한 서민들의 참된 삶을 맡길 수 있을 것인지.
도덕과 윤리가 몰락하고 있다. 이제 낡은 사고는 접고 투명하게 보이는 찬란한 거울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다녔으면 한다. 나를 언제 어디에서든지 먼저 자신의 거울 속에서 비춰보고 난 후 순리에 역행하지 않는 길을 걸어갔으면 한다.
맹자 진심 편을 살짝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福生於 淸儉하고(복은 청렴하고 검소함에서 생기고), 德生於 卑退하고(덕은 자신을 낮추고 물러서는데서 생기며), 道生於 安靜하고(도는 안정에서 생기고), 命生於 和暢하고(생명은 화창함에서 생기며), 患生於 多慾하고(근심은 욕심이 많은데서 생기고), 禍生於 多貧하고(재앙은 탐욕이 많은데서 생기며), 過生於 輕慢하고(과실은 경솔함에서 생기고), 罪生於 不仁(죄악은 어질지 못함에서 생겨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과 사회의 섭리를 효과적으로 인용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좌지우지 한다면 사회의 병폐를 만들어내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내 자신이 최고가 아니다. 두루두루 살펴보고, 덕행이 무엇인지, 효행이 무엇인지, 먼저 알고 지도자의 선두주자로 나서야 할 것이다.
순수하고 선량한 서민들의 새까만 눈동자가 기다리고 있다. 이들에게 커다란 웃음소리를,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자연은 언제나 한결같다. 함께 사랑을 나누고 베풀어갈 수 있는 길이 최고의 길이며 느낌의 방향이다.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랑의 꽃망울을 활짝 터트려 향기를 나열시켜보자. 이것이 최고의 자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은 느낌이 없다. 만족함도 없다. 다만 최고의 악을 잉태할 뿐이다. 마음의 평안함이 곧 행복을 느껴볼 수 있는 방향일 것이다.
함께 느껴볼 수 있고, 함께 행복의 문을 열어갈 수 있고, 마음과 마음을 신뢰하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신 성장 동력의 경제소리를 들으며 부정부패 없고 싸움 없는 사회 속을 맑고, 밝게, 그리고 가볍게 밟으며 걸어가 보자.
느낌표의 방향은 과연 어디를 비추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