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오빠들 사이에서 자라 남자애들이 노는 곳에 자주 섞여 놀았다. 겨울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냇가 얼음판 위에서 팽이치기를 했는데 얼음은 땅바닥보다 표면이 매끄러워 팽이가 잘 돌아 아이들은 얼음판 위에서 팽이 치는 것을 좋아했다.
대개 소나무의 관솔이나 박달나무 같은 무게가 있고 단단한 나무를 잘라 밑동을 뾰족하게 깎고 쇠구슬을 박아 만든 팽이였는데 닥나무껍질로 만든 채로 탁탁 때려주면 원심을 그리며 잘도 돌았다.
어린 눈에 팽이의 원심력이 만들어 내는 문양이 신기하고 예뻐서 팽이치기 구경을 즐겨했다. 어느 날 누군가가 도회에 사는 삼촌이 사다주었다며 윗부분에 색동저고리처럼 알록달록하고 동그란 줄무늬가 그려진 매끈한 팽이를 가져왔는데, 그 팽이가 중심의 균형을 이루며 돌아갈 때 내는 색깔과 문양이 어찌나 황홀하던지 그 아름다움에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관솔로 투박하게 깎은 팽이도, 기계로 매끈하게 다듬은 잘 생긴 팽이도 열심히 채로 때려주지 않으면 금새 핑그르르 쓰러지고 만다는 관성의 이치는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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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동부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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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이 꼭 팽이치기 같다.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금새 스르르 주저앉을 것만 같아 비틀대는 팽이를 혼신을 다해 돌리고 있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우리는 예상보다 더 긴 인생설계를 해야만 한다. 예전에는 환갑이 되면 손주 재롱이나 즐기면 되었지만 이제는 언제까지 계획해야 할지도 막막할 만큼 남은 시간이 길어졌다.
새로운 차원의 제2 인생설계를 다시 해야 하는 것이다. 늙고 병든 몸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결코 축복이 될 수 없다.
늙는다는 것은 몸이나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배우는 것을 멈출 때 늙는다. 나이가 들면 새롭게 배워야할 게 많다. 멋있게 나이 드는 법, 젊은이와 소통하는 법, 말 참는 법, 너그러워지는 법, 혼자 노는 법, 혼자 밥 먹는 법...... 쓸쓸한 거 같지만 자신의 삶의 질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받아들이고 변화하면서 스스로 신성한 노동을 창출해낼 때 내 인생도 균형 잡힌 팽이처럼 쌩쌩해지지 않겠는가.
사는 일은 때때로 잘못 친 팽이처럼 튕겨나가 어느 귀퉁이에 사정없이 곤두박질치기도 한다. 그럴 때에도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시 팽이를 돌려야 한다. 팽이는 언제나 다시 돌릴 수 있으니까. 삶의 묘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데에 있으니까. 남들의 짐은 수월해 보이고 내 짐의 무게만 버겁게 여겨질 때 저들도 나만큼 힘든 날이 있었겠지 하고 생각한다. 어쩌면 남들도 나를 보며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니까. 오늘도 내 인생의 팽이를 열심히 때리면서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