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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동부신문 |
일단 더듬고 본다. 이마를 거쳐 콧날을 따라 입술을 더듬는다. 단단한 턱을 타고 목덜미로 내려서면 조금씩 감이 오기 시작한다. 어깨를 쓸어내려 가슴께쯤에서 숨을 멈추면 온 몸의 세포가 그를 향해 반응한다. 순간, 본체를 가린 치장물들을 거칠게 벗겨낸다. 그러나 결코 서두르지는 않는다.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 가슴을 탐미한다. 그곳엔 또 어떤 세계가 꿈틀거리고 있을까 더듬이를 곧추세우고 여행을 시작한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신대륙을 발견하는 여행과 같다. 아니 오지를 탐험하는 탐험가와 같다고 하는 편이 더 옳다. 미지의 정글 속 같은 사람의 복잡다단한 마음을 더듬고 짚어가는 일이 어찌 탐험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때로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망망대해에서 방향키를 놓쳐버린 어부의 절망을 맛보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선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휴양지 같은 초원을 만나고 어떤 사람에게선 풀 한 포기 보듬어내지 못할 것 같은 황무지를 만난다. 깎아지른 절벽 같고 진흙탕 가득한 수렁 같은 이가 있는가 하면, 때론 시원하게 사람의 마음을 씻어 내리는 폭포수 같은 이도 있다.
플라타너스 같이 반짝이고 프리지아처럼 청순하며 산개나리같이 고혹적인 이가 있는가 하면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픈 회한을 품은 사람도 만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봄 햇살처럼 따뜻해서 깊숙한 내면속에 잠재한 존재의 뿌리까지 흔들어 깨우는 맑은 영혼도 만난다. 삶에 대한 예지와 영감을 가져다주는, 만나는 사람마다 넉넉하고 흔쾌하게 해 주는 사람이다. 이런 이는 잘 그려진 풍경화와 같아서 벽에 걸어두고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야트막한 토담집 위로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금방이라도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담을 넘을 것 같은 푸근한 가슴을 지닌 사람을 좋아한다. 아마 내게 부족한 사람냄새에 대한 목마름일지 모르겠다. 그를 만나면 사람을 신뢰하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희망과 용기를 갖게 한다. 삶의 고단함에 지쳐있을 때 어머니가 끓여 주시는 따뜻한 미음 한 그릇 같은 위안이 된다. 그 앞에서는 왠지 가슴 밑바닥의 서러움까지 울컥 넘어와 목 놓아 펑펑 울고 나서도 금방 말갛게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더듬고 여행하는 사람은 참으로 많다.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것은 대지처럼 믿음직하고 소나무처럼 한결같은 사람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루 좋아한다는 점이다. 대지는 생명을 발아시켜 희망을 주고, 소나무는 싱그러운 피톤치드로 몸과 마음을 평화롭게 해준다. 사람의 품성도 이와 같아서 자연을 닮은 사람 곁에는 늘 보이지 않는 생명력이 꿈틀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잘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자연을 닮아간다는 말이 아닐까.
좀 더 관대하고 좀 더 품을 수 있으며 좀 더 넓어지는 것, 그런데 그게 몹시 어려운 일인가보다. 많은 이들이 바라지만 잘 안 되는 것을 보면. 상대에게서 무얼 원하거든 내가 그렇게 되어라! 나의 숙제도 늘 그거다.
<약 력>
▷경북 영천 출생▷동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문학석사)▷<갤러리 오차드> 관장▷사단법인 창작수필문인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국제펜클럽 회원▷문학의 집 서울 회원▷저서 : 수필집「중년으로 살아내기」, 「진달래술 익을때 만나고 싶은 사람」 외 논문집 <전혜린 수필연구>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