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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날씨가 좀 흐렸다. 덕분에 어제처럼 덥지 않았다. ![]()
ⓒ 경북동부신문
하늘엔 엷은 회색빛 구름이 깔려있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6월에 딱 어울리는 날씨다. 오전 중에도 산보를 갈 만했다.
어제는 태양이 떠오르자마자 불붙은 것처럼 뜨거웠었는데.
부산댁에게 전화를 해서 차 한 잔 마시자고 했다. 그 부부는 우리보다 일년 전에 귀촌한 잉꼬 부부다.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마침 얘기할 사람을 잘 만났다는 듯 망설임없이 이야기를 꺼낸다.
남편 친구 한 사람이 서울에서 대구로 직장을 옮겨 내려왔는데 부인은 따라오지를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아이들 돌본다고 서울을 떠나지 못한다는 것. 하긴 그런 얘기는 한두 번 듣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 중에 자식 공부시키는 것이 최상위가 된 지 오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국에 가족 보내고 혼자 일해서 돈 보내는 기러기 아빠가 많았는데 이젠 한소끔 수그러들었다는 것이다.
스펙을 위해서 학생 혼자 외국에 연수를 가는 것이라면 이해할 만하다. 대학생 정도, 아니면 고등학교 졸업반 정도쯤 된다면 혼자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가 이젠 정상이 되어간다는 생각이다. 부산댁 친구라면 아이가 대학생 이상은 되었을 텐데, 기숙사 보내는 셈치고 아이를 서울에 두고 남편을 따라 내려갈 여자는 여전히 많지 않은가 보다.
내가 그런 의미로 말하자 부산댁은 아이들 때문만이 아니란다. 부부 두 사람이 시골 출신으로 겨우겨우 서울에 자리 잡았는데 어떻게 지방에 도로 내려가겠느냐는 것이다.
하긴 옛날 지지리도 가난했던 시골 생활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시골 출신일수록 다시 시골에 유턴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대구는 시골이 아닌데?
내 친구들이 대표하는 서울 출신자들은 어떨까? 서울 출신자들은 시골에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가끔 외국 여행 중에 보는 프랑스의 프로방스나 독일의 작센 지방의 풍광은 좋아해도 한국의 시골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기차 타고 지나가면서 보이는 경치가 옛날보다 훨씬 풍요로워 보인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조금은 생겼다. 환경이 좋아진 것은 인정하지만 사람이, 맘에 맞는 사람이 없어서 시골에 오기를 꺼리는 사람 또한 많다.
“지금 나이에 새로운 친구를 만들 수 있겠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바로 옆에 남편이란 친구를 버려두고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를 일주일에 몇 번이나 만날 리는 없고 한 달에 몇 번 정도 된다면 영천에서 친구를 만나러 서울로 올라가면 된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또 그리운 마음으로 편도 3시 간 반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런 흥분이, 그런 기쁨이, 내게 젊음을 주고 타성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하지만 도시인에게의 현실은 도시에서 떠나면 뒤처진다는 생각, 병원 가까운 데에 있어야 급할 때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 등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우리 마을엔 나나 부산댁 같은 사람도 있다. 아직도 철없이 남편을 좋아해서 함께 있는 것이 마냥 좋기만 한 우리네 같은 사람 말이다.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하면 꼼짝없이 바보로 몰린다. 딸 바보가 아니라 남편 바보 말이다.
그런데 남편들은 은퇴 후에 왜 혼자라도 시골에서 살고 싶어 할까?
왜 시골 생활이 남편들의 로망이 되어 있을까?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리고 많은 부인들은 왜 남편을 따라 가고 싶어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 역시 모를 일이다. 따라온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와서 보니 좋더라는 것인데.
오늘도 바람 살랑살랑 부는 마루 한 켠 그늘에 누워 뜨거운 땡볕에 익어가는 하루를 반추한다. 시간을 빠르게도 느리게도 보내는 방법이 이 한가로운 시골생활에 있네요.
시골에서 살아 보실래요? (2018년 6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