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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군 장안면 개안길 10-2에 있는 보은 선병국가옥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주택으로 현재는 중요민속문화재 134호로 지정된 우리나라의 3대 고택 중 1곳이다. 이 집은 전남 고흥의 갑부였던 우당 선영홍(1862~1924)과 그의 아들 선정훈이 지은 99칸의 대저택으로 지금은 그의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일명 우당 고택으로도 부른다. 고려시대부터 전남 고흥의 거금도에서 살았던 보성선씨 종갓집은 일제 강점기 해산물의 수출 등으로 거부가 된 인물이다. 세월이 지나 섬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이거지를 찾았고, 서울 여의도와 천안, 보은 등 지관들이 낙점한 세 곳 중에서 육지 속의 섬과 같은 보은으로 이거해 왔다. 우당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소작인들의 소작료를 적게 받았고, 기숙학교를 세워 숙식을 제공하며 가난한 집안의 인재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덕을 베푸는 등 의인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보은에서도 ‘위선최락(爲善最樂)’, 즉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가풍에 따라 관선정을 지어 전국의 인재들을 모아 가르쳤고,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이 배고픔을 몰랐다고 할 만큼 선을 베풀었다. 조선 말 소작료만 벼 만석을 거두어들일 정도로 부잣집이였던 보성선씨 장손 선정훈은 선병국의 선친으로 당대 최고의 목수를 찾아 1919년부터 1921년까지 3년에 걸쳐 건물을 지었다. 이 집은 서원계곡 끝자락에 위치해 하회 마을처럼 연꽃이 물에 뜬 형상인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명당 터로 소문나 있다. 원래는 전체 부지가 4만 평에 이르고 고택 대지만 해도 약 4,000평이나 되는 넓은 땅에 99칸의 저택과 서당인 관가정까지 합하면 건물이 134칸이나 된다. 관가정은 착한 사람끼리 모이면 본을 받는다는 뜻으로 수업료나 숙식을 무료로 운영하다 보니 가난해서 배울 수 없었던 인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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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동부신문
이곳의 산세는 속리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마로면의 구병산(870m)을 일으키고 여기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며 내려와 장안면 서원리에서 520m의 봉우리를 일으켜 이 집의 주산이 되었다. 집터는 속리산 자락에서 흘러나오는 개울물이 제법 큰 삼가천이 되어 흐르면서 개안리에 조그만 삼각주(三角洲)를 만든 섬 모양의 명당자리다. 풍수에서는 계수즉지(界水則止)의 원칙에 따라 땅속으로 흐르는 지기는 물을 만나면 그 행로를 그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곳은 구병산의 끝자락과 택지 사이에는 삼가천이 흐르고 있지만 이러한 곳은 특수한 경우로 도수협(渡水峽)이라 하여 물 밑으로 지기가 흘러 들어간다고 본다. 즉 바닷속의 섬과 같은 이치이다. 고택의 주변으로는 사신사 대신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에워싸고 있고, 담장은 2중으로 특히 외벽담장은 그 높이가 높아 강바람을 막아주니 집안은 안온한 장풍국(藏風局)이 된다. 또한 4면이 모두 물로 둘러싸여 있어 풍수에서는 이러한 형국을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모습과 같다하여 연화부수형의 길지로 해석한다. 풍수서 『朝鮮의 風水』에서는 연꽃은 원만한 꽃이라 군자를 배출한다 하였고, 물이 풍부한 이곳은 재물이 풍성하여 부귀(富貴)의 발복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최고의 길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