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구리(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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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동부신문
뱃사공의 시체를 떨쳐내고 유유히 노질을 하는 태열의 뒷모습이 잦아질 때 까지 동명과 소옥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엉킨 억새에서 풀벌레가 울었다. 무심코 억새대궁을 따서 입에 가져가는 소옥의 얼굴에 그늘이 완연했다. 억지로 힘을 주어 대궁의 물기를 짜내는 뺨에서 볼우물이 그려지고 있었다. 한번도 그런 적이 없지만 왠지 동명은 소옥의 표정에 신경이 쓰였다. 세상 어디에도 없이 두 사람이 남겨졌고, 싫어나 고우나 한평생을, 땅콩껍질 속의 두 알맹이처럼 붙어 살아야 한다는 지극히 운명적인 기로에 서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위해주려고 다짐했다.
억새풀밭을 앞장서서 헤쳐 나갔다. 궁녀 소옥의 눈에 비친, 세자 동명의 생소한 행동이 낯설었지만 스스로 살을 때내는 아픔이 올지라도 두 사람이 감당해야할 몫으로 돌려세웠다. 이제 그는 한 여자의 지아비이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범부다운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새삼 각성했다. 굼돔부락은 쉽사리 민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겨우 보인다싶은 민가는 수풀에 가려 짐승의 소굴처럼 음산했다. 거기다가 약초나 민물고기 포획에 매달린 마을 백성으로 인해 낮에는 텅 빈 집이 태반이었다. 동명과 소옥이 살집은 얼마 전 목수가 다녀간 새집이라는 귀띔을 믿고 걸음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바람을 타던 풀씨가 한차례 얼굴에 닿았고 풀 향이라 킁킁대던 동명의 몸짓이, 소옥으로 하여금 애잔하게 읽혀졌다. 풀숲 사이로 뻗어온 햇살은, 고개를 들어 스스로에게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듯 청명한 버섯이 간간히 보였다. 독버섯은 색이 화려하다고 익힌 소옥의 손에 수더분한 몇 개의 버섯이 쥐어져 있었다. 부러진 나뭇가지와 바람이 머무는 곳에 터를 잡은 잎사귀들과, 두렵게 옮겨지는 보폭은 곧 뜨겁게 소용돌이 쳤다. 적당한 둔덕에 집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마터면 체통 없이 내부 깊숙한 곳에서 탄성을 지를 뻔했다. 그만큼 긴 하루의 여정 속에서 지친 육신을 맡기고 싶었던 게다. 한 나라가 보여주는 역사의 수레바퀴 안에서 목숨 따위와 상관없이 서로의 생사를 결정하는 소용돌이 속을 달려온 셈이었다. 목이 잘려도 이상할 것 없는 선례(先例)안에 살아남은 고귀한 생명줄이여, 응달로 파고드는 정오의 햇살이 빠르게 나뭇가지에 가려 명멸(明滅)했고, 바람 소리가 줄어들자 숲은 어깨동무하듯 한 묶음이 되었다. 동명은 다시 갈 수 없는 양지부락 궁궐을 떠올렸다. 소옥이 앞장 서서 길을 열었고 아담한 토담집 기둥에서 소나무 무늬가 그대로 알몸을 드러냈다.
그리고 돌멩이 같은 알갱이와 지푸라기가 진흙과 어울려 습도며 환기와 접착에 탁월하게, 뿌리내린 토담집으로 온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측간은 마당 귀퉁이에 자리했고 부뚜막을 돋보이게 하는 가마솥과 몇 평 남짓한 텃밭에는 손쉬운 채소가 심어져 있었으며, 방 두 개가 나란하게 붙어 수시로 인기척에 민감하여 서로를 지켜주도록 지어져 있었다. 이미 각자의 방에는 옷가지가 준비되어 있어서 생활하는 데는 크게 불편이 없었다. 동명은 방으로 들어가서 큰대자로 누웠다. 자신의 의복을 걸치고 부락초입에 목 잘린 허수아비로 걸린 죽음길이 참으로 고단했다. 거기다가 먹빛 비석에 박힌 가묘(假墓)의 이름들이 파릇한 인생에 종을 치게 한 셈이었다.
소옥은 방에 들어가 비로소 무릎을 꿇고 참았던 울음을, 오장육부를 북북 끓는 심정으로 토해내었다. 하루아침에 내려진 황당하고 참담한 현실에 뼈마디를 물고 늘어지면서 목 메이게 하는 한복판에 다다라 있다는 것을 통감했다. 역사(歷史)를 거부할 수 없듯 모든 것이 소용돌이쳐 자신과 세자를 순탄하게 놔두진 않는다고 받아들였다. 이내 이 난관을 반드시 이겨내야겠다는 악바리도 솟아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