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오피니언
연재·소설
충남 아산시 배방면 중리 300번지에 가면 조선시대 최고의 명재상이었던 고불 맹사성(1360~1438)이 자랐던 고택이 있다. 맹사성은 원래 개성에서 태어났으나 5~6세 때 부모님을 따라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이 집은 원래 고려말의 명장이었던 최영 장군의 아버지 최원직의 소유였으나 그가 위화도 회군에 따른 정란으로 죽음을 당하여 비어 있던 집에 맹사성의 아버지가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왔다고 한다. 훗날 맹사성은 최영 장군의 손녀사위가 되어 이 집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마당 앞뜰에는 600여 년이나 된 은행나무 2그루가 있는데 맹사성이 9살 때 심은 나무로 훗날 이 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하여 이 고택을 ‘맹씨행단’이라고 부른다. 맹사성은 그의 출생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그의 어머니가 시집을 와서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은 곧바로 한양에 과거 공부를 하러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맹사성의 어머니가 꿈을 꾸었는데 밝은 대낮에 하늘에 있던 태양이 갑자기 떨어져 엉겹결에 치마폭으로 받았다. 그 꿈이 하도 신기하여 맹사성의 할아버지께 이야기를 하였고 할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절대 입밖에 내지말란 당부와 함께 하인을 시켜 한양에 공부하러 간 아들을 아버지가 위독하다며 급히 내려오라고 하였다. 이에 부랴부랴 집에 당도한 아들이 아버지께 문안을 여쭈니 아버지는 ‘내 병은 그동안 다 나았으니 염려 말고 며칠 쉬었다 가거라’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집안에 머무는 동안 하늘의 계시를 받은 길몽으로 맹사성 선생이 잉태되어 그가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맹사성은 고려 우왕 12년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춘추관 검열을 시작으로 대사헌, 예문관 대제학,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다. 그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청백리로 그 당시 황희가 오랫동안 영의정 자리를 지키는 바람에 평생 최고 관직으로 좌의정에 만족해야 했다. ![]()
![]()
ⓒ 경북동부신문
이곳의 산세는 한남금북정맥에서 북쪽으로 하나의 지맥을 뻗어 광덕산(699m)을 지나 아산시 송악면의 설화산(447.5m)을 일으켜 본가의 주산이 되었다. 집 뒤를 쳐다보면 아름다운 봉오리가 5개가 있다고 하여 설화산을 일명 오봉산이라고도 부른다. 고택은 주산에서 동북쪽으로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뻗어 올라온 자락의 끝 지점의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집의 좌향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다 보니 자연적으로 북향으로 지어졌다. 북향집은 특성상 뒷산이 낮아야 한다. 그래야 햇볕을 충분히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북향의 집에 뒷산이 높아 햇볕을 가린다면 일조량이 부족해 이러한 곳은 음기가 충만해 잦은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안산은 배방산(361.6m)으로 약간 높은듯하나 거리가 있어 괜찮고 차가운 북풍을 막아주니 오히려 유리한 조건이다. 우리나라 북향집의 대표적 명가인 전북 고창의 인촌 김성수의 생가 역시 배산이 낮아 일조량이 충분하다. 그리고 고택 우측으로는 도톰한 둔덕이 있어 멋진 천연담장 역할을 해준다. 그런데 근래 들어 좌측 청룡 자락은 채석장 개발로 흉물스런 모습을 하고있어 참 안타깝다. 수세는 집 좌·우측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집 앞에서 합류하여 금곡천으로 흘러들어 고택을 환포 해주니 집안의 생기 누설을 방지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