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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비난과 비판은 천지 차이다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입력 2026.05.13 09:33 수정 2026.05.13 09:35

으레껏 선거철이 되면 지역사회는 다시 뜨거워진다. 그러나 그 열기가 반드시 이성의 온도는 아니다. 후보들의 공약이 쏟아지고, 지지와 반대의 목소리가 뒤엉키며, 말의 전쟁이 일상이 된다. 문제는 그 논쟁의 품질이다. 말은 폭포처럼 쏟아지는데 생각은 실개천만큼도 흐르지 않는다. 지금 우리의 공론장을 채운 언어는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다. 이 두 말은 사실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 본질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비난은 사람을 향한다. “저 사람은 안 된다”, “능력이 없다”는 단정과 낙인이 그 전부다. 감정은 격렬하지만 논거는 빈약하고, 불꽃처럼 타오르다 흔적 없이 사라진다. 반면 비판은 문제를 향한다. 왜 이런 정책이 나왔는지, 어떤 구조적 모순이 깔려 있는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비난이 인격을 태워버리는 것이라면, 비판은 현실을 잘게 해부한다. 불꽃과 등불의 차이다. 불꽃은 주변을 밝히는 듯하다가 꺼지지만, 등불은 어둠을 지속적으로 밝혀준다.
비난이 지배하는 사회의 폐해는 명백하다. 감정을 소모시키고 갈등의 앙금만 켜켜이 쌓이는 동안, 정작 물어야 할 질문들은 증발해 버린다. 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지, 어떤 구조를 손봐야 하는지에 대한 사고 자체가 억눌린다. 비난이 많아질수록 지역은 내내 제자리만 맴돌고, 정치는 인물 중심의 감정 소비로 전락한다. 우리가 오랫동안 목격해온 익숙한 풍경이다.
이와 달리 비판이 살아 있는 사회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린다. 비판은 문제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게 만들고, 해결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사유하게 한다. 다양한 해석과 대안이 쌓이며 정책은 정교해지고, 지역은 앞으로 나아간다. 발전이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기적이 아니다. 수많은 비판적 사유의 축적이 만들어내는 느린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유권자는 무엇을 봐야 하는가. 인물의 호감도가 아니라 그가 제시하는 ‘모델’을 봐야 한다. 말로 하는 공약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 이면의 실행 구조를 따져야 한다. 재원은 어떻게 만들 것인지, 기존 행정 체계와 충돌하지는 않는지, 지역 경제 안에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좋다”는 감상에서 멈추지 않고 “가능한가”를 묻는 것이 시민의 책임이다. 선거 과정에서 불거지는 갈등조차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지역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신호로 읽어야 한다.
결국 지역의 수준은 후보가 아니라 시민들이 결정한다. 도로와 건물로 일컬어지는 하드웨어와 예산만으로 발전을 논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발전의 진짜 엔진은 소프트웨어, 즉 시민의 인식과 판단의 깊이다. 비판이 풍성한 사회에서 정치는 성숙하고, 비난이 들끓는 사회에서 정치는 퇴행한다. 이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너무 오래 외면해 왔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감정을 따를 것인가, 이해를 따를 것인가. 사람을 볼 것인가, 구조를 볼 것인가. 비난에 머물 것인가, 비판으로 나아갈 것인가. 비난은 쉽고 빠르지만 남기는 것이 없다. 비판은 느리고 어렵지만 변화를 만든다. 그 선택이 곧 우리 영천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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