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구리(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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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동부신문
범은 일격에 목덜미를 물어뜯을, 상대가 되는 먹잇감이 아니라고 판단해서인지 천천히 그리고 충분히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발바닥에 두꺼운 살점이 있어서 거의 표면에 닿는 소리는 처음부터 탄력으로 소리자체를 죽이고 있었다. 그것이 더욱 최적의 공포스러운 모양새가 되었다. 우태는 꿇어앉은 자세에서 그대로 눌러져 퍼질고 앉은 자세로, 이미 한 톨의 대항기미(對抗氣味)마저 없어져 있었다. 모든 운동세포가 깡그리 박살나서 숨만 딸각딸각 쉬는 산송장이었다. 제발 고통 없이 죽여 달라고 소원했다. 범의 윗니와 아랫니가 한껏 벌어진다 싶더니 어깻죽지를 사납게 뜯어 발겼다.
피가 튀었고 허연 뼈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걸 고통이라 해야 되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주저함 없이 몸에서 빠르게 해체하는 위엄이야 말로 동물의 제왕다운 품격 같았다. 곧 하얗게 질려있는 우태의 머리를 한입에 넣어 우지끈 씹었다. 우태는 거기까지였다. 한사람의 일생이 죽어라 땅만 파먹다가 늦은 봄철잠깐 연명을 도울 요량으로 지네 잡이에 뛰어든 것이 한눈을 판 죄라면 너무 억울해야할 이유이지 않는가. 한 마리를 더 잡겠다는 욕심이 하산을 놓쳐 길을 헤매다가 범의 먹이가 되었다면 이 또한 통탄해야할 이유이지 않는가. 그 밤을 기다리던 우태의 처(妻) 소궁은 필시 큰일을 직감했다. 뜬눈으로 날을 새우고 촌장 무송을 찾아가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아뢰었다.
무송은 혼자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기에는 사안이 중차대했다. 양지부락 초입에 자리하여 당산나무의 실한 가지에 매달린, 방방곡곡 북을 힘껏 두들겼다. 추명 합하가 등극한 뒤 마을백성들이 억울하거나 아뢰올 상소가 있다면 언제든지 북을 두들겨 타당한 논의를 하자는 취지에서 방방곡곡으로 이름 지어져 있었다. 둥둥 거침없이 양지부락을 휘감고 대궐까지 소리가 퍼져 나갔다. 무송은 아직도 얼얼한 손목을 주물리며 호위대장 태열을 기다렸다. 불안함을 떨쳐내지 못한 소궁도 옆에서 자리를 지켰다. 궁궐의 문이 열리고 희번득하게 태열이 등장했다.
“무슨 일인가?”
무송이 예의를 차리면서 또박또박 말문을 열었다.
“호위대장 나리, 필시 범의 소행 같습니다. 지네 잡이 우태가 하룻밤을 새었는데도 귀가하지 않았습니다. 어젯밤 산기운이 쩌렁쩌렁한 것도 피비린내가 진동한 것도 우태의 행방과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우태의 처에게 악몽까지 겹쳤는데 틀림없이 사실처럼 느껴졌습니다. 범이 우리의 수호신이지만, 지켜주지 못하고 우리를 해한다면 당연히 응징으로 마을 백성 스스로가 단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대로 놔두면 이보다 큰 재앙이 이 나라를 덮칠 것입니다. 합하께 말씀드려 옳은 판단으로 재가를 간청합니다.”
태열은 소궁의 표정을 살폈다. 뭔가 할 말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고개를 숙인 그대로 묵묵부답 말이 없었다.
“우리가 대적해야 할 상대가 누군지 상기해라. 함부로 덤벼들기에는 까마득하다. 그러나 마을백성의 생명을 위협한다면 그 어떤 것도 용서함이 없어야 한다. 합하께 아뢰어 재가를 받아낼 테니 다음날 이곳에 모여 증거를 수집해서 그 증거에 맞는 응분의 대가를 범에게 돌려줄 것이다. 내일 해 뜨는 묘시(卯時)에 모여 출정식을 갖도록 하겠다. 각자의 연장도 빠짐없이 챙겨 와야 한다. 안 그래도 범이 너무 설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태의 넋을 위로해주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