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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담산동 313번지에 가면 조선시대의 전통가옥인 모학당(茅鶴堂)이란 고택이 있다. 이 집은 처음 기장 현감을 지낸 김득헌이 1624년(인조 2년) 창건한 이후 1818년(순조 18년)에 다시 중건했다고 한다. 이것은 훗날 안채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상량문에서 1818년에 건립되었다는 기록이 나와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있었다. 택호(宅號)는 세월이 흐르면서 ‘기장댁’에서 ‘찰방댁’을 거쳐 지금의 ‘모학당’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강릉 김씨의 파 시조인 김득헌이 기장 현감을 지냈다 하여 기장댁이라 불렀고, 1940년대 남씨 종손이 이사와 그들의 고조부가 조선시대 종 6품인 찰방(察訪) 벼슬을 지냈다 하여 찰방댁이라 불렸으며, 1992년 현 집주인인 김종래씨가 사들여 모학당(茅鶴堂)이란 택호를 지어 부르고 있다. 모학당이란 이름은 이 동네의 이름이 모산리와 학산리라 해서 여기서 한 글자씩을 따와 지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1985년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6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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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동부신문
이곳의 산세는 백두대간인 강원도 정선군 두리봉(1033.4m)에서 북쪽으로 뻗어 나간 지맥이 강릉시 구정면에서 칠성산(980m)을 일으키고 계속 올라가 고택 뒤 자그마한 봉우리인 덕우봉을 일으켜 배산(背山)이 되었다. 고택은 덕우봉 산자락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어 원래 배산이 낮은 집터였으나 집을 지을 때 사면을 ‘ㄴ자’로 깎아 평지로 만들었기에 깎아낸 만큼 배산도 높아졌다. 그리고 뒷산에는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꽉 들어차 있어 나름 비보수의 역할을 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집 뒤편의 방풍림은 대나무를 많이 심어왔으나 자손 대대로 오래 살아야 할 저택에서는 수형(樹形)이 좋고 수령(樹齡)이 긴 소나무나 느티나무를 심어 용맥의 보호와 더불어 뒤편의 허(虛)함을 비보 하였다. 이와 같이 배산은 해결되었지만 서향으로 지어진 모학당은 우측 백호가 완전하지를 못해 겨울철 대관령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풍수에서는 우리나라의 계절풍인 겨울의 차가운 북서풍을 최고로 두려워하고 있다. 이것은 안온해야 할 집안의 생기를 모두 앗아 가버리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집 뒤편으로는 덕우봉이 있고 앞으로는 어단천이 흐르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명당이라고 하지만, 어단천의 물길 또한 집을 둥글게 환포(環抱) 해주지 못하고 반궁수(反弓水) 형상이다. 풍수서 『地理五訣』에서는 ‘10개의 천혈(賤穴) 중에 아홉 개는 반궁이다’ 할 정도로 물의 형상을 중요시하고 있다. 이것은 혈장 주변의 물은 혈장을 감싸 주면서 천천히 흘러나가야 안쪽의 생기를 잘 갈무리해주기 때문이다. 고택 앞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이 집터가 강릉의 8대 명당으로 부(富), 귀(貴), 손(孫)이 모두 보장되는 터라고 소개하고 있으나 필자의 소견으로는 산세와 수세가 그리 좋은 장소는 못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이름있는 명가 고택들은 대부분이 수백 년 동안이나 그 후손들이 이어받아 지켜나가고 있으나 모학당은 몇 차례나 주인이 바뀌었기에 혹 풍수적 결함 때문은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