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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한 논쟁을 보면서 이럴 땐 내가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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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동부신문
어린이날 놀이공원 앞 풍경입니다. 아이 손을 잡고 새벽같이 집을 나선 부모들, 입장권을 손에 쥔 채 놀이기구 앞에 늘어선 긴 줄, 그리고 기다림 끝에 맞이하는 짧은 환호.
그런 풍경이 최근 다른 각도에서 조명됐습니다. “돈을 내고 새치기할 권리를 사는 게 왜 문제냐”는 쪽과 “돈으로 줄을 앞지르는 게 아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느냐”는 사이의 온라인에서 불붙은 설전입니다.
발단은 간단합니다. 한 엄마가 어린이날 자녀와 놀이공원을 찾았다가 ‘우선 탑승권(매직패스)’ 이용자들 탓에 일반 대기 줄이 줄지 않자, 급기야 이재명 대통령에게 이 제도를 폐지해달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반응은 즉각 “공감한다”는 쪽과 “자본주의 원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쪽으로 갈렸습니다. 항공기 일등석, 고속도로 통행료, 고가 보험의 우선 진료까지 유사 사례가 줄줄이 소환됐습니다.
논쟁을 들여다보면 두 진영 다 틀리지 않습니다. 유료 우선탑승권은 분명 합법입니다. 전 세계 놀이공원이 채택한 수익 모델이죠. 시간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행위는 자본주의의 본질입니다. 반면 엄마의 불편함도 단순한 억지가 아닙니다. “왜 저 사람들은 새치기해요?”라는 아이의 물음 앞에 선 순간, 그것은 단순한 제도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의 충돌이 됩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매직패스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유료 패스 이용자가 지속적으로 합류하면서 일반 대기 줄이 사실상 무력화되는 구조라면, 그것은 프리미엄 서비스가 아니라 일반 이용자를 봉으로 만드는 시스템이 됩니다. 정상적인 패스트레인 운영은 일반 대기 시간을 일정 수준 이상 침해하지 않도록 비율을 조정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해외 테마파크들이 이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더 넓게 보면, 줄을 돈으로 사는 사회의 풍경은 놀이공원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유명 맛집의 ‘오픈런’ 대행 알바, 백화점 명품관의 대기 줄 서기 서비스, 인기 공연 티켓을 선점하는 매크로 프로그램까지. 업체가 제도적으로 파느냐, 소비자가 비공식적으로 구매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구조는 같습니다.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의 논리는 이미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문제는 그 논리가 어느 선을 넘을 때입니다.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시장이 비시장적 가치를 잠식할 때 사회적 유대가 손상된다고 경고합니다. 돈이 줄을 앞질러 갈 수 있다면 응급실 우선 진료도 같은 논리로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까요. 물론 놀이공원 패스와 응급 수술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비약입니다. 하지만 그 비약을 가능하게 만드는 논리의 연쇄를 가볍게 볼 수는 없습니다.
공공서비스가 아닌 민간 테마파크에 공정이나 형평의 원칙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 엄마가 대통령에게 폐지를 요청한 것은 민간 기업의 수익 모델에 국가권력이 개입해달라는 요청으로, 현실적으로도 적절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 불쾌감만큼은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단순한 상대적 박탈감이라면 개인의 감정 조절로 해결될 문제이지만 그것이 ‘공정한 줄’이라는 사회적 약속이 자본에 의해 허물어지는 것에 대한 본능적 저항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줄을 서는 행위에는 오래된 민주주의의 문법으로, 누가 먼저 왔느냐는 누가 더 부유하냐보다 공정합니다. 그 단순한 원칙이 통용되는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그것이 어린이날 놀이공원에서 한 엄마가 느낀 울적함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매직패스 논쟁이 우리에게 진짜로 묻고 있는 것은, ‘돈으로 어디까지 살 수 있는가’가 아니라 ‘돈으로 사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이겠죠. 다만 어린이들의 꿈의 공간인 놀이동산만은 모두에게 공평한 줄 서기가 작동하는 곳으로 남겨두면 어떨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