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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동부신문
‘법어’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환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몽산화상시중법어’‧‘고담화상법어’로 구성되어 있다. 각 법어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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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환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는 환산정응선사가 몽산에게 주신 법어이다. 몽산에게 확신이 서면 계행(戒行)을 지녀야 하고 계행의 오계(五戒)를 지녔으면 오직 무자(無字) 화두만을 참구하도록 조언하였고, 무자 화두는 네 가지 위의[四威儀:行‧住‧坐‧臥]안에서 참구하여야 하며 의심을 일으켜서 끊임없이 나아가면 깨달음이 있을 것임을 강조하였다.
둘째,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는 동산숭장주가 제자를 행각 보내면서 하신 법어이다. 행각을 할 때는 불도로 회포(懷抱)를 삼고 등한한 날을 보내지 말 것이며 어느 곳에서든지 정진하여 수행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셋째, ‘몽산화상시중법어(蒙山和尙示衆法語’는 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인 법어인데, 절에 와서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세상 인연‧고집‧집착 및 잘못된 생각 등의 인사(人事)를 다 끊고 절의 규칙을 잘 지켜서 삼년동안 공부해 견성하도록 경계하는 글이다.
넷째, ‘고담화상법어’는 참선하는 사람들에 내린 법어이다. 참선을 하려면 조용히 앉아 조주(趙州)의 무자(無字) 화두만을 참구하되, 참구하는 것이 단련되어 계속되면 마음의 경계가 고요해져 부처님들의 원만한 지혜를 알게 되고 묘한 법을 증득하게 되면 널리 인간을 제도하도록 지시하는 글이다.
마지막으로 ‘몽산화상법어약록’은 조선시대 널리 유통된 법어록(法語錄) 가운데 하나로 「시고원상인(示古原上人)」·「시각원상인(示覺圓上人)」·「시유정상인(示惟正上人)」·「시총상인(示聰上人)」·「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휴휴암좌선문(休休庵坐禪文)」등 6편과 고려의 보제존자 나옹의 「시각오선인법어示覺悟禪人法語」가 수록되어 있다.
한편 ‘몽산화상법어약록’ 언해본의 초간본으로 추정되는 책은 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본(보물 제767호)인데, 간기가 없어 간행연도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5세기 중반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1467년경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나‚ 인출된 판식과 본문의 구성면에서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불경 언해본들과는 다르다. 초간본의 후쇄본으로 국립중앙박물관(보물 제768호) 소장본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본(보물 제769호)이 알려져 있다. 보물 제768호와 제769호는 1472년에 인수대비가 인출한 것으로, 권말(卷末)에 김수온의 발문이 있다. 이들 후쇄본은 권수에 역자명(譯者名)이 삭제되어 있는 것 외에는 판식 등의 상태가 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본과 같다.
영천 영천역사박물관 소장본의 서지적 형태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의 권수제(卷首題) ‘法語/蒙山和尙法語略錄’이고 권말제(卷末題)는 ‘四法語/蒙山和尙法語略錄’이며 판심제(版心題)는 ‘法語’이다. 책의 크기는 세로가 28.8㎝이고 가로는 20.5㎝이다. 목판(木板)으로 간행된 본 책의 판식(版式)을 보면, 변란(邊欄)의 형태는 사주단변(四周單邊)이며 반곽(半廓)의 크기는 19.6×15.5㎝이다. 판심부(版心部)에는 어미(魚尾)와 판심제 그리고 장차(張次) 그리고 어미내에 각수명(刻手名)이 확인된다. 어미의 형태는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와 혼엽화문어미(混葉花紋魚尾)가 확인된다. 본문의 행자수는 8행 18자로 배열되어 있으며, 본문은 언해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본문 중에는 반치음과 방점 등이 그대로 번각되어 있는데, 이는 1472년 인수대비가 대대적으로 인경사업(印經事業)을 할 때 200부가 인출(印出)된 것의 번각본(飜刻本)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 책의 간행은 법련비구(法連比丘) 탄희(坦熙), 행청(行靑) 등의 스님들과 ‘金末乙祥 兩主‧金松乙伊 兩主‧林云伊 兩主‧者斤伊 兩主‧金禹鼎 兩主‧金世柱 兩主‧申石丁 兩主’ 등의 민간의 시주로 진행되었고, 권선(勸善)에는 혜징(慧澄)‧탄주(坦珠)‧윤오(允悟)‧설잠(雪岑) 등이 참여하였다. 형태적인 면에서는 보물로 지정된 판본과 비교하면 板面이 전체적으로 줄어 있고 上下內向의 黑魚尾에 어미속에는 ‘元‧通‧火‧行’으로 표시된 각수명의 약칭이 보인다. 본문의 글자와 한글 표기, 방점 등에 있어서는 원본에 충실하게 번각되었다. 저본의 간행과 관련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간행연도를 알 수 없으나, 다른 초간본과 비교할 때 권수면에 역해자(譯解者) 표시가 삭제되어 있고 김수온(金守溫)의 발문은 없는 후대의 번각본이다.
용천사 소장본의 판본처럼 원간본을 번각한 것으로는 1521년(중종 16)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1523년 풍기 석륜암(石輪庵), 1525년 황해도 심원사(深源寺), 1543년 진안 중대사(中臺寺)의 간행본이 있으며, 대문(大文)의 분단(分段)과 행자수를 달리하여 간행한 것으로 1517년 충청도 고운사(孤雲寺), 1535년 영변 빙발암(氷鉢庵)의 판본 등이 있다. 이외에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를 지양한 간행본은 1577년(선조 10) 순천 송광사판(松廣寺板)인데, 이 판의 특징은 구개음화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 가치 및 의의
‘법어’는 불교사‧국어사‧서지학 등 여러 분야에서 연구할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본 책은 1573년 전라도 담양의 용천사에서 간행된 목판본이다. 그 내용이 불교 선사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선종의 지침서로서 중세 국어의 원형적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조선 전기 불교 경전의 판본학 및 지방 사찰 간행본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