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구리(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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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동부신문
동(東)이 먼 곳에서 보현산 줄기를 타고 천천히 터고 있었다. 밤새 살찌운 어둠위로 햇살이 빠르게 스며들었다. 보현산 그늘을 걷어내는 아침은 평상시 날과 다르게 더욱 눈부셨다. 약조한 묘시(卯時)에 모두들 비장하게 모여들고 있었다. 곡괭이와 도끼와 쇠스랑과 죽창과 호미와 심지어 부지깽이까지 들고 나선 마을백성들의 위세는 가마솥 뚜껑까지 박살낼 소란스러움도 내포(內包)하고 있었다.
촌장 무송의 옆은 소궁이 지켰다. 아녀자라 만류했지만 남편인 지네 잡이 우태의 넋을 위로한다는 단단한 명분이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날이 선 도끼가 들려있어 어찌 보면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처럼 결사항쟁의 결기가 보였다. 수문장이 궁궐 문을 열자 호위대장 태열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들어라. 합하께서 윤허(允許)하셨다. 범의 횡포는 곧 두마국 백성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원인이 되니, 이를 엄벌하여 어제의 평화로운 나라를 되찾는데 서로의 보탬이 되어야 한다! 공을 세우는 자는 두마폭포 인근의 기름진 농토가 포상으로 주어진다고 합하가 말씀하셨다. 결코 물러서지 말고 모두들 앞장서라.”
범의 길목을 헤집어 보현산 골짜기를 탔다. 각자 가지고 온 주먹밥으로 걸으면서 주린 배를 채웠다. 범을 때려잡을 확신도 용기도 없었지만, 싸리나무가 한 가닥이면 잘 부러지지만 뭉친 다발은 결코 부러지지 않는 주장 앞에 서로의 간격을 중시 여겼다. 앞장 선 태열은 발소리를 죽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큰 어깨를 숙여 혼자 전진했다. 고맙게도 바람은 출정식에 나선 이들과 맞바람으로 불고 있었다. 수풀사이에 몸을 낮춘 태열은 먹이사냥에 성공하기 좋은 해질녘과 인시(寅時)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배가 부르면 움직임이 둔할 것이고 그만큼 야수성이 취약해져 위험노출도 줄어든다는 짐작을 하고 있었다.
크고 탄탄한 근육질 몸에 큰 머리와 긴 꼬리와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주황색 털이 범으로 구별되었다. 어쩌면 그런 것을 떠나 마주친다면 덩치에서 한 풀 기가 꺾여버리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태열은 먹이사냥에 성공한 범을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수풀 사이에서 허술하게 가려진 덩치 큰 범은 고라니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누운 풀숲과 나뭇가지에 우태의 옷가지가 선혈범벅 된 채로 처참하게 걸려있었다. 어느새 마을백성들도 태열의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남편의 옷가지를 발견한 소궁이 소리를 죽여 흐느꼈다.
더 이상 시각을 지체하다가는 정체가 발각되어 범이 달아나거나,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불상사를 일으키는 실수를 저지를게 뻔했다. 죽창을 전열에 배치하고 혹시나 전열이 무너졌을 때 후열로 다른 연장을 든 사람들로 배수진을 치게 했다. 한사람이라도 밀리게 되면 일순간 와르르 무너지기에 목숨을 건 죽을 각오가 우선이라는 지시를 태열은 떨리는 목소리로 내렸다. 아까 먹은 주먹밥이 얹힌 듯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도 있었다. 역시 동물의 제왕다운 먹잇감 공략은 고라니의 가운데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는데, 아연실색(啞然失色)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열의 신호가 떨어졌다. 전열에 배치된 서너 명이 죽창을 던져 늑대를 맞혀본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죽창은 정확하게 범의 몸통을 맞혔다. 순간 당황한 범은 먹잇감을 뺏기지 않으려고 덥석 문채 일어났다. 그때를 노려 계획에도 없던 순간적인 행동으로, 태열은 범을 향해 뛰어 들었다. 죽창이 꽂힌 몸통이었지만 꼬리를 들어, 달려드는 태열을 후려쳤다. 선명하게 채찍자국이 생겨난 얼굴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그 모습을 보며 후열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은 너나없이 범을 향해 몸을 날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