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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313번지에 가면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1925~1974)의 생가가 있다. 이 집은 옥천지역의 명가로서 1600년대부터 김씨, 송씨, 민씨의 삼정승이 살았다고 하여 3정승 터로 알려진 조선시대의 상류층 가옥이다. 1918년 육영수 여사의 부친 육종관씨가 이 집을 매입한 후 기단을 높여 다시 개축하였고, 이곳이 곧 명당 터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육 여사와 그의 오빠 5선 의원 육인수씨가 태어나고 자랐다. 그런 후 현대건설에 의해 1969년 전면적으로 개보수를 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고, 1974년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방치되어오다 1999년 철거되어 생가터만 남았다. 그런 후 2002년 육영수 여사 생가터 지표조사 실시 후 사업비 38억 원을 투입하여 안채 복원 공사를 시작으로 건물 13동 및 부대시설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고, 지금은 충청북도 기념물 123호로 지정하여 관리되고 있다. 육영수 여사는 이곳 교동 집에서 1925년 11월 29일 아버지 육종관씨와 어머니 이경령 여사의 사이에서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가정교육을 엄하게 받아 항상 예의 바르고 침착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1938년 옥천 죽향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 배화 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1942년 배화여고 졸업 후 교동집으로 돌아와 집안일과 아버지 사업을 도왔다. 1945년 11월부터 옥천여자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중 1950년 6.25사변이 일어나고, 부산에서 피난 생활 중 박정희 소령을 만나 그해 12월 대구에서 결혼을 하였다. 결혼 후 어린이들을 위한 육영재단 설립과 양지회 등 각종 단체를 조직하여 봉사활동에 앞장섰으며 한국의 어진 어머니상으로 존경을 받아왔다. 그는 사랑을 실천하는 영부인으로 살다가 1974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비운의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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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동부신문
이곳의 산세는 옥천읍의 진산인 마성산(409.2m)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나온 산줄기가 교동리 마을 뒤에 310m의 토형산을 일으켜 이 마을의 주산이 되었다. 여기서 남쪽, 다시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내려온 산줄기가 집 뒤에서는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고 양쪽으로 팔을 벌려 집을 오목하게 감싸주고 있다. 집의 북쪽으로는 일자문성의 토형산, 북동쪽으로는 금형의 옥녀봉, 북서쪽의 국수봉(270m)은 아름다운 문필봉, 앞쪽으로는 아미형 안산 등 택지 주변으로는 귀봉이 많아 부귀의 발복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이곳의 수세는 좌측 내외청룡 자락 이곳저곳에서 흘러오는 물이 작은 계곡물을 모아 집 앞을 지나가고, 백호 자락 안쪽에서 흘러나온 물줄기는 마을 우측을 감싸주며 흐르니 마을 안쪽은 늘 생기가 가득하다. 특히 백호 자락 넘어 교동저수지의 물은 이 마을의 암공수(暗拱水)가 되어 마을의 생기를 한 번 더 가두어 준다. 풍수에서는 청룡 백호와 안산 넘어 이렇게 보이지 않는 암공수가 있으면 보국의 기운이 모두 혈에 집중되므로 보이지 않는 암공수가 보이는 물보다 훨씬 더 좋다고 해석한다. 그래서 풍수서 『인자수지』에서도 “명조불여암공(明朝不如暗拱)”이라 하여 보이는(明朝) 물길이 암공(暗拱)수보다 못하다고 할 만큼 암공수를 좋게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