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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일반

[기고] 산남의진열전(山南義陣列傳) 237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입력 2026.07.03 09:41 수정 2026.07.03 09:44

조충래 전원생활체험학교장 본보 논설주간

ⓒ 경북동부신문
생노병사의 사고(四苦)에다 네 가지를 보태어 팔고(八苦)라 합니다. 네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과 헤어져야 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과 함께 해야 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구하고자 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얻지 못하는 구부득고(求不得苦),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오온(五蘊)에 집착함으로써 생기는 오음성고(五陰盛苦)를 말합니다. 우리의 육체[색(色)]가 감수(感受) 작용[수(受)]을 통해 생각으로 관념[상(想)]을 만들고 의지[행(行)]를 일으켜 식별하는 모든 행위[식(識)]를 오온(五蘊) 또는 오음(五陰)이라 하는데, 이러한 쉼 없는 육신을 통한 의식작용이 순간순간의 ‘나’를 만듭니다. 이 찰나의 ‘나’에 집착하는 것이 오음성고(五陰盛苦)입니다. 
붓다께서 6년의 고행 끝에 보드가야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연기(緣起)’라고 답할 수 있고, 그 깨달음을 중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세운 설법체계가 ‘사성제(四聖諦)’입니다. 붓다가 증득한 연기의 이치는 당시 운명론이나 창조론, 또는 우연론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생소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붓다는 사성제를 체계화시켜 녹야원에서 다섯 명의 비구에게 최초의 법의 바퀴를 굴렸고, 그들은 빠른 시일에 차례로 온전한 진리의 세계로 들어섰다 합니다. 이 사성제의 첫째가 바로 고성제(苦聖諦)입니다. 고를 성스러운 진리라 이름 붙인 것은 ‘지금’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설비유경(佛說譬喩經)에 안수정등(岸樹井藤)의 설화가 있습니다. 「어떤 한 사나이가 벌판을 어슬렁거리며 걷고 있는데 뒤에서 험악한 코끼리가 달려와서 달아나다가 웅덩이 속으로 급히 몸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칡넝쿨을 타고 밑으로 내려가는데 밑바닥에는 무서운 독사가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는지라 다시 올라가려고 하니까 위에서는 코끼리가 내려다보고 있고 들불이 일어나 사방을 휩쓸고 있었지요. 이 사나이는 밑바닥으로 내려갈 수도 없고 위로 올라갈 수도 없어서 중간에 매달려 있는 형편이 되고 말았는데 조금 더 있으니 자기가 매달려 있는 칡넝쿨을 하얀 쥐 한 마리와 검은 쥐 한 마리가 와서 갉아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인데 어디선가 꿀벌 다섯 마리가 날아다니면서 꿀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주는 거예요. 이 위급한 상황에 이 사나이는 그 꿀을 먹는 데 정신을 팔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꿀 몇 방울에 정신을 팔지 말고 위급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정상이지요? 그처럼 지금 잠깐잠깐 주어지는 쾌락이나 즐거움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고해(苦海)임을, 지금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고성제(苦聖蹄)입니다.

林龍相 義士 略歷(임용상의사 약력)③
公(공)은 이 참변을 듣고 급거히 귀진하여 大將(대장) 葬儀(장의)를 縞素禮(호소례)로서 거행하고 先大將(선대장)의 父公(부공)인 山南義陣(산남의진) 總指揮大將(총지휘대장)이신 東广先生(동엄선생) 鄭煥直(정환직)을 모시어 本部大將(본부대장)으로 추대하고 부서를 다시 편성하매 公(공)은 역시 左怉將(좌포장)으러 유임되어 잔군을 수습하고 신병을 증모하여 北東大(북동대)에 들어가서 훈련을 정여할새 公(공)은 임시 훈련장으로 임명을 받고 군사를 훈련시켰다 산남의진은 다시 각지로 출전하게 되었다 下山(하산)하는 그 길에 청하읍에 무난히 입성하여 백성을 위로하고 흥해읍을 습격하여 함락시키고 주둔되어있는 왜병을 전부 섬멸하고 왜적 주둔에 근거되는 중요건물을 소각시키고 입성하니 백성들이 환호하더라 西北(서북)으로 진군할새 경주 영천 등지를 경유하여 신령읍을 습격하여 함락시키고 입성하여 군수품을 압수할새 군창고에 들어가니 이때에 왜적들이 민간엽총 四百(사백)여정을 수집하여 봉치하였는지라 이것을 몰수하니 무기가 일시에 조금 완화되고 군민들이 크게 기뻐하여 환호하여 입진하는 사람이 만더라 大將(대장) 鄭煥直先生(정환직선생)은 新兵(신병) 二百餘名(이백여명)을 한 장소에 집단시켜 두고 公(공)을 불러서 분부하되 먼저 北東大(북동대)에서 新兵(신병)을 훈련시킬 때에도 신병훈련에 그대는 능숙한 수완이 있었기로 단시일 내에 훈련을 시켜서 지금 이만한 정도로 된 것이다 이번에 모집한 신병도 상당한 숫자로 되었으니 이 신병을 인솔하고 경주 朱砂山城(주사산성)에 들어가서 一個月(일개월)간 훈련을 시켜서 준비군이 되도록 그대에게 부탁하노라 公(공)은 이 분부를 받고 신병 二百名(이백명)을 인솔하고 남으로 향하여 경주 주사산성에 들어오고 본진은 북으로 향하여 의흥 의성 군위 등 읍성을 연전연파시키고 청송 등지에 진출하다
이때에 公(공)은 신병을 인솔하고 주사산성에 도착하여 그 지역 독지가인 李亨杓(이형표) 尹富儀(윤부의) 기타 여러 동지들의 준비하여 도와주는 군량과 기타물자를 얻어서 신병훈련을 十餘日(십여일)간 시키면서 각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수집하니 大丘(대구)에 주둔하고 있는 왜적의 대병력이 산남의진을 목표하고 뒤를 따라서 청송 등지로 향하여 산남의진과 교전되어 산남의진이 불리하게 되었고 또 大丘(대구)에 있는 왜병 큰 부대가 경주왜병 분견소에 증원되었는지라 정세가 이렇게 되고 뒷일을 생각하니 주사산은 大丘(대구) 慶州(경주) 그 사이에 계제되어 큰길이 전후좌우에 둘러있고 또는 주사산성이 저명한 요새라 경주에 주둔하는 적병들이 기필코 우리를 집중공격할 것이니 그때가 되면 우리는 반드시 사방포위망 속에 들 것이라 그렇게 되면 무기와 기타 모든 비품이 불완전한데 병법에 미래를 준비하란 훈계가 있으니 미리 조치하는 것만 못하다 혼자 생각하고 그 익일에 山下(산하)에 있는 모든 독지가들을 소집하여 의논을 정하고 그날 밤에 훈련소를 운문산으로 이동시키다. 
雲門山(운문산) 主人公(주인공)이 되는 雲門寺(운문사) 僧統(승통)은 원래에 山南義陣(산남의진) 大將(대장)에게 임명을 받고 산남의진 參謀(참모) 要員(요원)이 되어있는 그 사람이라 조만간 山南義陣(산남의진)의 분대가 이 산에 웅거할 일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옛날에 군용기지로 사용하던 그 터전에 수용이 되도록 미리 준비를 하여 운문산 주위에 있는 화왕산성 어성 조례산성 호거산성 폐성 철마山城(산성) 등지에 모두 복병하도록 장소가 준비되어 있고 山下(산하) 원근에 연락지로 운문 대천 선암 유천 서지山(산) 봉황 山(산)동 山(산)서 동창천 여러 곳에 모두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활약하는 인사들은 본래 雲門山(운문산) 유격장으로 있다가 본년 가을에 자인접전에서 피금되어 순사한 金世淳(김세순)의 잔군들이 이때까지 이곳에 활동하고 시기를 기다리다가 우리를 대환영하고 같이 활약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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