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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연재·소설

[연재소설] 고깔을 쓴다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입력 2026.07.03 09:52 수정 2026.07.03 09:54

한 관 식 작가

ⓒ 경북동부신문
말똥구리(27)
뻐꾸기도 유월이 한철이라 더 극성스럽게 자호천 기슭에서 울었다. 탁란(托卵)으로 숙주 알을 제거하거나, 새끼가 다른 새끼를 밀어내는 행동으로 살아남은 뻐꾸기 울음은 내내 비장하게 감돌았다. 그 울음이 잦아질 무렵 보현산의 기묘하고 신비한 형태를 관통하는 수상한 몸짓이 감지되었다. 숲이 철퍼덕 누웠고 덩치 있는 나무들이 꺾였다. 멧돼지와 노루와 산토끼가 한 방향으로 뛰었다. 범 두 마리가 영역표시도 없이 그대로 산을 장악했다. 꿀밤나무 이파리들이 버틸 세월을 두고, 범의 몸짓에 형편없이 나동그라졌다.
주로 단독 행동에, 각자 넓은 영역을 확보해 충돌을 피하고 생존에 유리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습성에 비켜간 범 두 마리의 등장이었다. 단번에 덮치는 은신과 매복이 왠지 소용없을 정도로 큰 덩치를 여지없이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다. 바람은 북풍으로 불고 있었다. 암수라 하기는 결코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맹렬하게 공격하지도 않았다. 다만 야행성인 그들의 코에 식별하고 탐지된 하나의 적(敵)이,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서로의 영역을 정해 방어하던 경계가 일순간 무너졌다.
그들은 한 뱃속에서 태어난 형제였다. 며칠 전 정력에 좋다는 맹신(盲信)으로 찢겨간 범도 같은 형제였다. 발굽동물을 사냥하는 먹잇감을 뒤로한 채 오직 진동하는 비린내와 노린내의 출처를 알고 형제애다운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한 번에 많이 먹고 며칠간 굶기도 하며, 큰 먹이는 여러 날에 걸쳐 먹기도 하는 습관이, 같은 탯줄의 애정으로 여전히 남아 있었을까. 최후에 퍼뜨린 형제의 질식하는 포효가 서로를 뭉치게 만들었다. 보현산의 봉우리에서 약속도 없이 걸음이 모아졌다. 사방으로 살점이 뜯겨나간 형제의 원혼을 코로 맡으면서, 곳곳에 영역표시 흔적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방에 튄 핏자국을 흠뻑 뒤집어 쓴 한 인간의 흔적을 쫒기 시작했다. 
언제나 목표물 앞에서는 숨을 멈추고 때를 기다려 덮쳤다. 그런 본능이 소리죽여 산길을 타면서 덩치에 맞지 않게 체중을 지지하고 충격을 흡수하는 부드러움이 되었다.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고 안에서 삭혀지는 울음은, 지켜보는 사람은 없지만 더욱 공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마을 불빛이 보이는 곳에 범들은 걸음을 멈췄다. 달빛으로 불콰하게 빛나는 염전과 곰내재에서 기립으로 선잠에 빠진 몇 마리 야생마와, 몸이 완전히 눕는 자세의 숙면(熟眠)된 몇 마리 야생마를 굽어보았다. 입맛만 다실 뿐, 큰 틀에서 그들을 무시하고 다시 공격목표를 한곳에 집중시켰다. 
범의 대가리를 도륙(屠戮)낸 귀소는 독특한 체취가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지배하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 비린내와 노린내가 남정네의 우월성에서 나오는 체취라 믿었다. 턱을 뒤로 젖히고 자지러지듯 환호하는 소궁을 보면서 새삼 뜨겁게 꽉 차오르는 전율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며칠을 살을 부비며 북적거려도 혈기왕성은 양보할 수 없었다. 밀어내듯 안고, 안으면서 파고드는 여명(黎明)은 희부옇게 밝아오는 아침햇살에 길을 터주고 그래도 두꺼워진 어둠을 밀어내기 위해 홰를 치는 초가삼간 수탉이 설핏 범들의 눈에 들어왔다. 
소궁과 귀소는 여태껏 알몸으로 수탉의 울음을 채집하고 있었다. 저 울음이 끝나면 동이 틀 것이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한 짐 가득 지게에 겨울 땔감을 날라 올 것이다. 틈틈이 날라 온 땔감으로 긴긴 동짓날 기나긴 밤을 지낼 대책으로 적격이라 꼽으며, 며칠 얕은 잠은 힘들지 않다고 생각되어졌다. 순간, 싸리나무 울타리 한쪽이 짜그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궁과 귀소는 알몸으로 방문을 벌컥 열었다. 범을 요절낸 단단한 기운이 두 사람을 지켜 준다고 믿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겁 없는 어느 놈이 소란을 떨고 있느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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