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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문화유산 재발견] 북한에서 제작된 ‘영천아리랑’ - 영천역사박물관 소장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입력 2026.07.03 10:33 수정 2026.07.03 10:39

ⓒ 경북동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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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제작된 조선민요선집에 수록된 12인치 LP, B면 ②에 수록된 영천아리랑 가사가 내지에 수록되어 있다. 북한에서 노랫말의 구성상 세 가지 형태의 영천아리랑 가운데 가장 널리 유행하는 형태로 추정된다. 표지 뒤면 가사집에 수록된 가사를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현재 영천에서 불리는 아리랑과는 다소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영천아리랑과 관련해서 영천의 이주민과 연결해 볼 수 있는 자료가 최근에 영천역사박물관에서 발견된 한 장의 사진에 주목해 볼 수 있다.
일제의 경제 수탈이 전국에 걸쳐 진행되던 1920년대 중반에 영천 농민들이 철원으로 최초의 이주를 하게 된다. 농민들이 소작료의 급증과 토지 수탈에 견디다 못해 일제의 술책에 넘어가 집단으로 이민 정책의 시작은 영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주민들은 황량한 들판을 개척하며 많은 눈물을 흘리며 두고 온 고향산천과 일가친척들을 그리워하여 노래를 불렀을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그 때에 이주 관련 사진이 영천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일본인들이 철원지역에 만든 중앙수리조합(中央水利組合)으로 강원도 철원군과 평강군 약 1만 정보에 걸친 큰 조합에 필요한 인원을 영천에서 가장 먼저 이주시킨 제1호 이민자 사진이다. 1924년 철원지역 개간지에 처음으로 이주한 영천지역에서 43명의 이주민 사진이다.
민족 수난사의 구체적인 증언이라는 점은 무엇보다도 의미가 있다. 이는 영천의 아픈 유이민사(遊移民史)의 구체적인 사진 자료란 점에서 중요한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역사는 기록되지 않으면 잊히고, 기억되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영천역사박물관이 확보한 북한 제작 LP와 이민 도착 사진은 일제의 잔혹한 수탈 속에서 잡초처럼 버텨낸 민초들의 구체적인 삶의 기록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철원 벌판에 남아있는 영천의 흔적을 찾아 그들의 눈물을 위로하고, ‘영천아리랑’에 담긴 민족의 아픈 역사를 온전히 복원하는 일입니다. 100년 전 영천 농민들이 던진 슬픈 질문에 이제 우리가 응답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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