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오피니언 연재·소설

[연재소설] 고깔을 쓴다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입력 2026.07.15 09:55 수정 2026.07.15 09:57

한 관 식 작가

ⓒ 경북동부신문
말똥구리(28)
열린 방문 앞에는 여명의 기운으로 길을 터주는 아침햇살에 바짝 다가선 범의 우렁찬 자태가 숨 막히도록 다가와 있었다. 까무러치도록 놀라운, 범이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가 여차하면 뛰어들 자세로 대청마루에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본 범은 보현산만큼 높았고, 두마폭포처럼 거칠게 존재감을 뽐내었다. 귀소는 순간적으로 문고리를 잡아당겨 방문을 닫아걸었다. 비명을 지르던 소궁은 맞닥뜨린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제야 겉옷만 걸치고 다듬이 방망이를 쥐어들었다. 홑바지로 대충 아랫도리를 감춘 귀소도 막대모양의 절구 공이를 쥐고 다음을 대비했다. 
햇살을 받아 확연하게 드러나는 범의 몸체는 방문 전체를 뒤덮고 남음이 있었다. 숨 막히는 대치는 짧은 시간만을 허락하고 있었다. 우지끈! 문짝이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거친 입맛을 다시는 범의 대가리 두 개가 방안으로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소궁이 쥐고 있는 다듬이 방망이는 나무였지만, 귀소의 방어용 무기는 쇳덩어린 절구 공이였다. 타격감으로 꽤 상처를 입힐 것 같은 신뢰감을 주고 있었지만 벽과의 간격이 좁혀지자 무용지물이었다. 집채만 한 범 두 마리가 방안을 장악하자 소궁과 귀소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초가삼간 위에 홰를 치던 수탉이 잠시 길게 뽑은 목을 멈추고, 그 장면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범 하나에 하나씩, 가볍게 물고 싸리나무 울타리를 뛰어넘어 보현산의 가장 깊은 골짜기로 사라져버렸다. 소궁이 앞섰느니 귀소가 그 뒤를 따랐는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밤새 혼신의 힘으로 합궁한 두 사람의 신음 소리만 집안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챈 촌장 무송은 황급히 방방곡곡 북을 두들겼다. 북채를 잡은 손에서 하마터면 소궁의 선택이 자신이었다면, 범의 먹이가 되었을 운명 앞에 간담이 서늘해진 마음을 달래려는 의도가 소리로 말해주고 있었다. 호위대장 태열이 궁궐 문을 열고 나왔다. 
“무슨 일인가? 촌장.” 
“소궁의 집안이 쑥대밭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침범이라기엔 너무 믿기지 않아 방방곡곡 북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앞서라.”
북소리에 잠이 깬 마을백성들도 흥미로운 볼거리라 생각했던지 뒤를 따랐다. 소궁의 집 앞에 도착한 마을백성들은 놀라운 광경에 저마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소궁의 전남편 지네잡이 우태가 가장 실한 싸리나무 가지를 가져와 정성껏 울타리를 엮었던 담은 여지없이 뒤틀어지거나 주저앉아 있었고, 그래도 튼튼하다고 믿었던 방 문짝은 형편없는 몰골 그 자체였다. 저런 힘이 가해졌다는 것은 덩치가 어느 정도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거기다가 핏자국도 없이 소궁과 귀소가 사라졌다는 것은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라는 것이 입증 되었다. 마을백성들은 술렁거렸다.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이번에도 범의 대가리를 요절내야 한다고 목소리가 모아지고 있었다. 태열은 손짓으로 각자의 마을백성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대청마루에 올라가 자신을 부각시켰다. 
“들어라. 이 사태는 무엇보다 심각하다. 원수를 갚기 위해 서로를 내맡긴다면 어떤 재앙이 찾아와 피바다가 될지 모르는 낭떠러지에 내몰릴 것이다. 여기에서 멈춰야 한다. 이번에는 두 마리가 찾아왔지만, 그 두 마리가 수십 마리로 힘을 합쳐 우리를 물고 갈지 모를 일이다. 악순환의 고리는 여기에서 충분하다. 차라리 용한 점집 무당을 불러 한판 굿거리로 고리를 끊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촌장은 서둘러라!” -계속



저작권자 경북동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