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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연재·소설

[풍수연재]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와 묘소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입력 2026.07.15 09:58 수정 2026.07.15 10:00

양 삼 열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원 교수 풍수지리학 박사

ⓒ 경북동부신문
충남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에 가면 우리나라 제4대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다. 이 건물은 원래 그의 증조부(취동)가 터전을 잡았으며 아버지(윤치소)가 이웃으로 살림을 나면서 1907년 건립하였고, 바깥사랑채는 건축 양식으로 보아 1920년 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증조부가 이곳에 터를 잡은 후부터 집안에는 재산이 물밀듯이 불어났고, 몇 대를 걸쳐 수십 명의 인물이 배출되었다.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오음 윤두수(1533∼1601)가 윤 대통령의 10대조며 큰할아버지가 구한말 군부·법무 대신이었고 할아버지는 안성군수·육군참모장을 지냈다. 애국가를 작사했다고 전해지는 윤치호가 당숙이며 아버지는 중추원 의관을 역임했다. 이렇게 일제 치하에서도 부귀를 누리며 잘 살다 보니 친일파 사슬과 무관할 수 없어 이들 중 일부가 친일 행위자 명단에 들어 있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승만 정권 아래 내무장관, 서울시장을 역임하고 민주공화당에서 당의장을 지낸 윤치영씨는 윤 대통령의 삼촌이다. 이렇듯 수십 명의 걸출한 인물을 배출했고 큰 부(富)를 일구었기에 풍수가에선 윤 대통령의 음·양택지에 대해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윤 대통령 본인도 가문의 번성이 풍수 때문임을 인정하는지, 가끔 선산에 들러 풀 뽑기를 즐겼고, 자신의 신후지지(身後之地)도 국립묘지를 마다하고 선산을 택하였다.
먼저 생가의 산세는 아산시 염치읍 영인산(363.5m)에서 북동진하여 음봉면의 국사봉(222.8m)를 일으키고 여기서 다시 북쪽으로 행진하여 둔포면의 국수봉(170m)을 지나 다시 북동진하여 신항리 마을 뒤편에 나지막한 봉우리를 일으켜 주산이 되었다. 
생가는 주산에서 동남쪽 마을로 희미하게 뻗어 내린 산줄기 끝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생가 뒤편을 자세히 살펴보면 살짝 솟은 입수봉이 보이고 여기서 양팔을 벌려 끌어안은 안쪽에 생가가 위치하고 있다. 좌우 청룡 백호는 그 높이나 거리 면에서 완전하지는 못하나 택지를 감싸주고 있고 특히 좌청룡 자락은 길게 뻗어 우측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를 거수(拒水)해주고 있어 집안에 부(富)의 발복을 기약해준다. 또한 마을 앞에서 집 쪽으로 구불구불 흘러 들어오는 물줄기 또한 아주 유리한 수세 형국이다. 그리고 집안의 선영은 생가에서 남쪽으로 약 8km 떨어진 음봉면 동천리 마을 뒷산에 있다. 이 묘역은 증조부께서 어느 날 길에 쓰러진 노스님을 보살펴 생명을 구해주니 스님께서 그 은혜로 지금의 선영 자리를 점지해 주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윤 대통령의 가족 묘원으로 제일 위쪽에 윤보선 내외가 있고 그 아래로 고조부모, 증조부, 부모 순으로 모셔져 있어 역장(逆葬)의 모습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유교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과거 윤 대통령께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 묘역의 주산은 반듯한 목형의 문필봉으로 많은 인물이 배출될 것을 미리 암시해주고, 혈장 뒤편으로는 과협(過峽)이 있어 이곳이 진혈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풍수고서들 마다 혈장 뒤편에 과협이 있으면 앞쪽에 혈이 맺힌다 하여 과협을 진혈의 증거로 삼는다. 이렇듯 음양택을 막론하고 풍수적 길지에 자리 잡았기에 후손들의 발복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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