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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일반

이명지에세이) 내 인생 차림표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입력 2015.07.24 18:39 수정 2015.08.07 18:39

수필가 이명지

휴일, 모처럼 행주치마를 두르고 부엌에 선다.

시장에서 갓 사와 아직 대궁에 푸른 기가 도는 풋 양파를 망에서 쏟아낸다.
탱탱한 양파의 싱싱함이 쨍 하며 소리라도 낼 듯하다.

장아찌를 담근다.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알싸하면서도 달큰한 양파에 톡 쏘며 새콤한 사과식초와 짭조름한 간장을 넣어 풋 양파 장아찌를 담근다.

아싹아싹 연하게 씹히는 장아찌의 맛은 더위에 지친 여름 입맛을 돋우는 데 제법 괜찮다.

만날 밖으로만 도는 엉터리 주부이지만 일 년에 몇 가지는 꼭 내 손으로 만드는 밑반찬은 양파장아찌와 매실장아찌, 그리고 가죽나물 장아찌다.

최소한의 내 손맛 차림표로 입맛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며칠 전 오랫동안 이웃해 살던 아주머니를 우연히 만났던 충격이 아직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여전히 곱고 단아해 보였던 그녀는 놀랍게도 청각을 완전히 상실한 장애자가 되어 구청에서 근로를 하고 있었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하루아침에 유복한 생활을 접고 지하 월세 방으로 나앉은 충격 때문에 청각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한 청각손상이라 보청기나 어떤 첨단의료기기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다.

들리지 않으니 평소보다 목소리가 과장된 그녀의 사연을 듣고 있으려니 그 암담함에 위로의 말조차 잊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일이라도 하니 견딜만하다며 애써 웃었다.

대체 무슨 말을 얼마나 듣고 싶지 않았기에 청각의 끈을 놓아 버린 것일까. 그래도 그녀는 인생의 짠맛도 신맛도 끌어안아 삭혀내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아보였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다. 사랑도 외로움을 덜어주지는 못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많은 상처를 주는 법이며 애정은 쏟은 만큼 그 상실의 아픔도 크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외로움이 두려워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는 더욱 바보 같은 일일 테지만 최소한 모든 건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문제라는 것쯤은 생각하면서 살아야하지 않을까.

타인에 의해 휘둘리고 상처받고 강요당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고 내가 책임지며 스스로 설 수 있는 주인으로서의 내 삶.
양파장아찌도 여러 날이 지나야 제 맛이 들게다.

매운맛은 식초의 신맛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단맛이 되고 탱탱하던 육질도 간장에 적당히 절여져야 감칠맛이 될 것이다.

인생이 장아찌와 무엇이 다르랴. 환경이나 다른 요인에 의해 맛이 달라지고 인생관조차도 달라지는 것을.
ⓒ 경북동부신문

그러나 다른 것들을 받아들여 제 원래의 맛을 돋우고 또 새로운 맛을 창조해 내는 것은 자신의 몫이 아니겠는가.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을 내 의지에 의해 사는 것, 그것은 인생의 차림표를 스스로 짜는 일일 것이다.
그녀의 삶도 장아찌처럼 곰삭아 깊은 맛을 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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