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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일반

이명지 에세이) 진달래술 익을 때 만나고 싶은 사람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입력 2015.07.29 16:47 수정 2015.07.29 16:47

수필가 이 명 지

나는 술을 좋아한다. 중년쯤 되고 보니 더 그렇다. 저녁 으스름이지면 따끈한 정종 한 잔에 뜨거운 어묵탕이 생각나고, 소주 반잔에 맥주를 적당히 채운 소맥이 그리워진다. 예쁜 레스토랑에서 와인리스트를 책 읽듯 정독하며 입맛을 다시면서 메를로 와인을 주문할 때 정말 행복하다. 술맛은 역시 인생 맛을 알 때가 제격이다. 굴곡진 인생사 논함 없이 무슨 술맛이랴.

나는 술친구들을 제일로 친다. 술 한 잔을 나눌 수 없는 사람과는 속 깊은 이야기도 되지 않는다. 그래 더러 비정기 주당집회 소집령을 발동한다. 언제나 기껍게 달려오는 나의 술벗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멋지다 ㅎㅎ~

어느 날은 가슴이 헛헛해서, 어느 날은 공돈이 생겨서, 어느 날은 술이 당겨서... 술이 필요한 게 꼭 이유가 필요할까. 그냥 친구가 필요할 뿐이다. 술이라는 친구.

가끔은 혼자 술을 마신다. 어떤 어려움에도 꿋꿋하게 잘 버텨준 내가 대견할 때, 오늘하루가 진짜 뿌듯해 스스로 축배를 들고 싶을 때 내 어깨를 스스로 두드리며 잔을 채운다. 그렇다고 알콜 홀릭은 아니다. 기껏해야 나의 주량은 와인 반 병 수준, 그야말로 술을 즐기는 정도다.

술을 놓고 사람과 만나는 법을 나는 일곱 살 때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아버지는 진정한 애주가셨다. 내 기억에 우리 집에는 언제나 술이 있었던 것 같다. 대게 집에서 담근 동동주이거나 더러는 손님이 사온 대병의 백화수복 정종, 막소주가 있었다. 손님이 오시면 솜씨 좋은 엄마가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안주 맛에 막내인 나는 아버지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앉아 안주를 축내곤 했다. 우리 집에는 손님이 많은 편이었다. 집에 술이 있으면 아버지가 동네 친구들은 집으로 부르셔서 술잔을 기울이기를 좋아하셨고, 더러는 술 생각이 나거나 고민거리가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와 아버지에게 조언을 청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내 기억에 아버지는 그저 귀 기울여 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계셨을 뿐 딱히 해결방도를 제시하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사람들은 마음이 후련해졌다며 돌아가고 다시 술병을 안고 찾아오곤 하였다. 그저 일개 농사꾼에 불과하였지만 아버지는 같이 웃어주고 깊이 고개를 끄덕여주고, 같이 아파해주는 속 깊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명절 때면 우리들에게도 술 한 잔씩 따라주시며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한다 주도를 가르쳐주곤 하셨다. 일곱 살이 되던 정월대보름날 저녁 그날은 연중행사로 먹는 삶은 고기 수육을 놓고 술상을 받으셨는데 어머니는 술을 못하셨기에 막내인 내가 술상 맡에서 안주를 축내며 아버지의 술친구 노릇을 하게 되었다. 동동주에 사카린 한두 알을 넣으니 쌀알이 동동 뜨는 게 꼭 감주 같아서 홀짝홀짝 마시다 한 잔을 다 비워버렸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려는데 세상이 온통 빙글빙글 돌아 픽 쓰러지고 말았다. 결국 언니 등에 업혀서 찬바람을 쐬고 난리를 피운 끝에 진정이 되었지만 얼마나 혼쭐이 났는지 그 날 이후 나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술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람을 얼마나 우습게 만드는지 나는 일곱 살에 알았다.

다시 술을 마주하게 된 때는 세상이라는 저자거리에서 고뇌를 알게 되면서부터이다. 사회생활 속에서 가장 흔한 것이 술자리인데 분위기에 어울리려다보니 익숙해진 것도 있지만 술이 주는 소통의 흔쾌함과 따뜻함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애주가 아버지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았다면 그 소통의 인자도 물려받았기를 나는 소망했다. 오가는 술 잔 속에서 공감의 능력으로 서로 위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이보다 더 큰 유산은 없으리라.

나는 어머니처럼 동동주를 잘 담그는 법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매년 매실주를 담그고 복분자주도 담근다. 언젠가는 진달래술도 담가볼 계획이다. 내가 빚은 술들이 어찌 고가의 명품주들과 비기랴! 하지만 이 술들이 익을 때 쯤 생각나는 사람들을 불러 꽃빛 우러난 술 한 잔 권하며 그의 이야기에 깊이 귀 기울여줄 수 있다면 명품와인 로마네꽁티가 무애 부러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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