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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동부신문 |
'서편제’(제작 이태원, 감독 임권택)는 우리 영화사의 이정표 같은 작품이다. 1993년 4월에 개봉돼 6개월 동안 국내 최초로 100만 관객을 모았다. 100만명은 개봉관 단성사를 비롯해 서울의 일부 극장에 든 관객을 집계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극장의 전산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서울은 물론 전국적으로 집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당시 100만명은 요즘 1000만명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서편제’는 세계 영화 산업의 중심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 속에 ‘우리도 할 수 있다’ 는 자신감을 갖게 한 계기가 됐다.
요즘 국내 뮤지컬 시장은 20여 년 전 영화시장을 연상케 한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에 대응해 국산 영화들이 힘겨운 싸움을 했듯이 라이선스 뮤지컬, 곧 외국 뮤지컬을 수입해 우리 배우들이 공연하는 대형 뮤지컬들의 틈바구니 속에 창작 뮤지컬이 분출하고 있다. 아마 2, 3년 안에 뮤지컬에서도 영화 ‘서편제’와 같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국내 뮤지컬 시장은 지난 10년 동안 1000억원에서 3000억원 대로 크게 늘었다. 2013년에는 2500편이 공연됐다. 뮤지컬은 연극과 오페라가 넘보기 어려울 정도로 국내 공연산업의 선두 주자가 됐다. 이는 SM엔터테인먼트와 명필름 등 대형 연예기획사와 영화 투자·제작사들이 잇따라 뮤지컬에 뛰어들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뮤지컬 시장을 새로운 수익 창출원으로 판단한 것이다.
지난 1일 서울 LG 아트센터에서 20여 년 전 함께 영화 담당 기자를 했던 동료들과 제작비가 50억원에 이른다는 창작 뮤지컬 ‘아리랑’을 보았다. 일제 침략부터 해방기까지 우리 민족의 아픔을 담은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 전 12권 가운데 1920년대 말까지를 각색했다. 김제 죽산면 감골댁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일제 침략에 이은 의병 투쟁, 만주 이민 후 일제의 학살 및 독립 운동과 일제 탓에 꽃피우지 못하고 져버린 연인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 삼아 민족과 민초들의 가슴 아픈 정서를 담았다.
‘아리랑’은 원작이 있는 만큼 이야기 전개에 힘이 있었다. 조금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무대와 발광 다이오드(LED) 스크린 영상은 창작 뮤지컬의 발전상과 함께 한 단계 높은 품격 있는 뮤지컬임을 느끼게 했다. 감골댁 역의 김성녀, 머슴 출신의 일제 앞잡이 양치성 역의 김우형, 감골댁의 딸이자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 방수국 역의 윤공주의 연기와 노래가 특히 돋보였다.
‘아리랑’을 본 뒤 동료들과 얘기를 나눴다. 미국과 유럽의 대형 라이센스 뮤지컬이 넘쳐나지만 우리 민족이 겪은 핍박과 곡절을 담은 대형 창작 뮤지컬은 꼭 있어야 한다는 소감이 오갔다. 역사는 아무리 아프더라도 원형질과 같이 살아 우리 가슴 속에 남아 숨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쉬움도 있었다. 방대한 원작을 3시간 남짓 응축해 담은 데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7명이다 보니 흐름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앞으로 주인공을 줄이고 곁가지도 쳐내 간명하고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를 전개해야 할듯 싶다.
뮤지컬이 영화에 이어 대중상업예술로 커갈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뮤지컬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이어져야 하고 물론 제작과 경영도 투명해져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다. 현재 관객이 1000만명이 넘는 국산 영화는 해마다 서너편이나 된다. 우리와 인구가 비슷한 나라 가운데 그런 나라는 없는 것 같다. 그것은 영화 제작자들이 끊임없이 관객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노력한 덕분이다. 앞으로 국내 창작 뮤지컬 업계는 작품의 완성도와 함께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의 관객들이 감당할 수 있는 높은 티켓 값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창작 뮤지컬이 대중문화예술로 꽃을 피우고 새로운 수익의 창출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