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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동부신문 |
1905년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그러자 우리 민족은 분연(憤然)히 일어났다.
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을 썼고, 민영환, 조병세, 홍만식, 이상철, 김봉학, 송병선 등은 자결로써 항거하였다.
우리 스스로 힘을 키우자는 자강운동과 을사오적을 암살하려는 투사들도 있었다.
고종황제는 이상설과 이준, 이위종 등을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고, 전국적으로 항일 의병운동이 전개되었다.
산남의진(山南義陣), 일제에 항거하기 위하여 일어난 대표적인 의병 진영중의 하나이다. 그것도 우리 고장 영천을 중심으로 활발한 항일운동을 전개한 의병진이었다. 그럼에도 영천 사람 중에 산남의진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지역에 살면서도 말이다. 솔직히 필자도 산남의진이란 용어가 생소하였다.
그래서 산남의진에 대한 역사를 다시 공부해 보았다.
1906년 고종은 영천시 자양면 출신의 정환직에게 나라를 구하라는 밀지를 내렸다. 그의 아들 정용기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초대 대장이 되어 3,000여 의병으로 의진을 결성하고 영천, 청송, 포항, 영덕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9월, 영일군 죽장면 입암 전투에서 대장 정용기를 비롯하여 40여명이 일시에 순국하자 그의 부친 정환직이 다시 제2대 대장이 되어 의병활동을 전개하였으나 그마저도 그 해 12월에 순국하고 말았다.
다시 1908년 보현산 거동사에서 먼저 순국한 영령들에게 위령제를 지낸 후, 정환직의 조카 정순기의 부탁으로 흥해 출신 최세윤이 새로운 대장으로 추대된 후 제4차 의진을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그러한 수많은 선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아픈 역사는 36년간의 일제강점기와 남북분단, 동족간의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선진대국에 진입하고 있다. 뼈아픈 우리의 역사와 선현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되었다.
이렇게 조상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자유와 풍요를 저절로 얻어진 것으로 착각하고 국가와 민족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권력과 부를 얻고자 하는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심지어 학교에서 조차 인성과 도덕, 국가관은 간곳이 없고 오직 성적과 학벌과 섣부른 인권만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패러다임의 혼돈시기에 자양면 보현산의 거동사가 큰일을 하였다. 2012년 2월 보현산 거동사가 국가보훈처로부터 현충시설로 지정되었다. 산남의진 순국 의병들의 위령제를 모시면서 제4차 의진을 결성한 곳이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사찰이 단지 부처님을 모시고 기도하는 기능만 하는 곳이 아니라 나라가 어려울 때는 국가를 위한 역할을 하고, 지역사회에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자비(慈悲)를 실천하는 곳, 그릇된 도리를 타파하고 바른 도리를 선양하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도량이요, 잃어버린 정신을 일깨우는 곳이기를 발원한 거동사 주지스님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일제의 망령이 되살아나 독도와 위안부 문제 등의 망발이 계속되고 있는 이때에 이런 반가운 소식이 있으니 더욱 뜻 깊다. 또한 거동사에서는 옛 일을 본받아 산남의진순국선열위령제를 거행한다고 한다.
거동사가 현충시설로 지정된 사실을 널리 알리고, 영천시민들이 우리 고장 산남의진의 거룩한 행적을 잊지 않고 기념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기회에 충효의 고장 영천의 호국 충의의 정신을 다시 한번 일깨웠으면 한다.
행여 선의(善意)로 만들어진 뜻 깊은 이러한 일이 어떤 개인이나 조직의 이권이나 이념에 의해 폄하되거나 훼손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