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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일반

이명지 에세이) 내 가슴을 껴안는 법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입력 2015.08.12 15:53 수정 2015.08.12 03:53

수필가 이 명 지

내가 아는 김 화백은 여백의 그림을 참 잘 그리는 작가다. 화선지의 한 쪽 부분에 아주 절제된 몇 필치의 그림을 그려 넣고도 나머지의 여백을 가득 채우는 느낌을 준다. 비움으로써 채운다. 하늘에 떠 있는 달 하나가 세상을 흔쾌히 채우듯이.

비우기가 채우기보다 어렵다는 말에 나는 자주 고개를 끄덕인다. 바쁘게 뛰는 사람들은 시간 비우기가 쉽지 않고, 많이 가진 자는 주머니 비우기가, 욕망을 쫓는 자는 마음 비우기가 어려운 법이다. 하물며 가족들과 휴가계획을 놓고 내 욕심 하나 비우기도 힘든 마당임에랴.

휴가일정을 받아놓고 연일 가족회의를 열었다. 어디로 갈까. 처음 며칠은 행복한 고민이었다. 한데 날이 갈수록 문제가 심각해지고 얼굴을 붉히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대부분 누군가의 양보와 포기가 없이는 타결을 못 본 것 같다. 무조건 어딘가로 떠나자는 가족들과 휴가 때만이라도 방바닥을 뒹굴며 실컷 게으름을 피우거나, 산더미같이 책 쌓아놓고 매혹적인 군것질을 하며 읽고 싶었던 책 실컷 읽어보겠다는 나와 늘 팽팽하다. 때로는 각자 하고 싶은 대로 따로따로 휴가를 보내면 어떻겠느냐는 내 제의에 쏟아지는 눈총이 따갑다. 여름휴가 때만이라도 주위 한번 비워보기가 이렇게 힘들다.

휴가는 여백을 찾아가는 출구라고 믿고 있다. 시간의 여백을 얻은 만큼 마음의 여백 또한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꼭 혼자 시간을 갖는 것만이 여백은 아닐 것이다. 바다를 가든 고향의 어른들을 찾아뵙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흔쾌히 할 수 있을 때 휴가는 재충전의 여백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의무 때문에 마지못해 뭉쳐 다니는 휴가는 여백의 출구가 되기 어렵다. 더구나 초를 다투며 살아야하는 직장과 주부의 역할을 다 가진 여성들에게 휴가는 여백의 휴식은커녕 노동의 고단함을 가중시키기 십상이다.

때로는 가슴이 원하는 것을 위해 휴가를 낼 필요를 느낀다. 가슴이 하는 일을 머리가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있다. 꽉 짜여진 일과 속에서 시간결핍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가슴 한 쪽은 늘 텅 비어있는 것이 현대인들 아닌가. 괴테가 “인간은 살아있는 한 언제나 방황한다”고 했듯이 살아있기 때문에 고뇌하고 살아있기 때문에 외롭다. 하기에 가끔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백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는 꿈이나 좌절, 열등감과 상처까지도 꺼내보고, 지금까지 나를 달리게 한 것이 희망이었는지 객기였는지 아니면 허영이었는지도 들여다보면서 그렇게 자신과 마주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 여백을 만들기에 가장 좋은 것이 여행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그것도 혼자 떠나는 여행. 하지만 혼자 여행을 떠나겠다고 결심할 만큼 용감한 여성이 몇이나 될까. 가족이나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굴레도 있겠지만 자신 안의 소심함과 보수성이 더 큰 장벽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자신 안의 역마지성과 문득 만나게 되는 것이 더 두려운 것인지도. 나만 그런가?


누군가는 그랬다. “생각하기 위해 시간을 내라. 그것은 능력의 근원이다. 꿈을 꾸기 위해 시간을 내라. 그것은 대망을 품는 일이다. 웃기 위해 시간을 내라. 그것은 영혼의 음악”이라고. 나는 내 가슴을 향해 외쳤다. 너를 위해 시간을 내라. 그것은 너의 가슴을 껴안는 일이며 네 자신과 만나는 길이며 너를, 네 영혼을 사랑하는 법이라고. 비운만큼 채울 인생의 여백을 만드는 길이라고.....

ⓒ 경북동부신문
약력▷경북 영천 출생▷동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문학석사)▷<갤러리 오차드> 관장▷사단법인 창작수필문인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국제펜클럽 회원▷문학의 집 서울 회원
▷저서 : 수필집「중년으로 살아내기」, 「진달래술 익을 때 만나고 싶은 사람」 외 논문집 <전혜린 수필연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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