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오피니언
연재·소설
오늘은 3년 임기의 이장을 뽑는 선거 날이다. ![]()
ⓒ 경북동부신문
유권자는 남녀 합해서 34명이란다. 종이를 하나씩 받고 이름 밑에 동그라미를 그려서 제출했다. 현 이장이 재선에 나왔고 새로운 일꾼이 이장 직에 도전했다. 결과는 신인 이장의 탄생이었다. 전 이장이 축하의 인사를 제일 먼저 건네고 굳은 악수와 포옹을 했다.
박수가 쏟아졌다.
그 다음은 마을의 잔칫날과 같았다.
미리 준비한 상자 가득한 횟감과 즉석에서 준비한 채소들로 구성된 회덮밥이 언제나처럼 주 메뉴로 올랐다. 함께 가져온 매운탕거리로 국을 끓였다. 거피를 한 뽀얀 빛깔의 인절미와 직접 농사지은 메밀로 만든 메밀묵이 한층 잔치 기분을 내 주었다.
과일은 귤과 사과. 식사 후엔 누구나 좋아하는 양촌리 커피 한 잔씩. 믹스 커피를 그렇게 부르는데 시골서 같이 먹으면 그렇게 맛이 좋을 수 없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메뉴들이다.
이곳 시골에 와서 느낀 일인데 여러 곳에서 말없이 돕고 성실하게 행동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등 한 사람이 일등 한 사람을 앞장서 축하해 주는 모습은 진정 아름다웠다.
자동차 외관을 손보러 영천의 일급 정비업소 ‘하원’에 갔을 때 일이다. 자동차 수리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대기실 벽을 보니 ‘듣지 않는 곳에서 삼가며 보지 않는 곳에서 진실하자’란 표어가 붙어 있었다. 그런 모토로 근무하는 직원들이 어찌 성실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15년 된 ‘트라제’를 몰고 있는 관계로 작은 고장은 ‘해성’ 카센터에 가는데 젊은 사장은 확실하게 고쳐지지 않으면 돈을 받지 않는다. 자동차 키의 자동 부분이 고장 나서 일일이 열쇠로 차를 잠궈야 해서 불편했는데 그이가 손을 보았다.
“확실히 고쳐졌는지 모르겠어요.”
역시 돈을 받지 않겠단다. 그 후로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더 이상 고장 없이 잘 쓰고 있다. 지나갈 때마다 한번 더 돌아보며 간다. ‘다음엔 수리비를 배를 주어야지’ 하면서.
서울과 영천을 오기는 천일고속 버스의 기사들도 훌륭하다.
운전을 시작하기 전 승객들에게 정중히 인사하며 “오늘도 여러분을 성심 성의껏 모시겠습니다.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안전벨트를 꼭 매주시기를 바랍니다” 당부하는 모습이 흐뭇했다. 대구와 광주를 오가는 아름다운 기업 금호고속의 모토는 ‘금호고속의 최종 목적지는 고객 행복입니다’인데 가슴 따뜻해지는 말이다. TV를 설치하러 온 KT 기사는 바람 불고 추운 날임에도 선을 연결하러 전신주에 올라가는 힘든 과정을 마다 않고 작업해 주었다. 그 기사가 돌아간 후에 문의 사항이 생겨 전화를 걸게 되었다. 한참 동안 설명을 해 주더니 여기가 전신주 위라 오래 얘기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럴 수가? 내 자신이 너무나 놀라고 미안하였다. 이 추운 날에 몇 번이고 긴 사다리를 타고 전신주에 올라가는 일을 하면서도 고객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하는 그 기사 분에게 미안했고 고마웠다.
내가 그의 설명에 한참 동안이나 이해를 못하면서도 짜증내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무의식중에라도 ’갑질’이라 불리는 행동을 했다면 전신주 위의 그이는 얼마나 서글펐을까.
옛 중국의 고사가 생각났다. 마당을 쓰는 하인이 사흘 만에 나타났다. 주인이 빗자루를 던지며 쫓아내려 하자 그 하인이 말했다. ‘아들이 죽어 땅에 묻고 오는 길입니다.”
타인에게는 언제나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을 수 있고 우리는 항상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음날에 새 이장이 추운 바람을 뚫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몇 가지 공지 사항을 알려 주려고, 또 실제 거주하는지도 확인하러 왔단다.
시골은 함께 하는 일이 많은 곳이다. 농사 일이 없는 겨울은 한가해서 함께 놀고, 농사철엔 동네 사람들과 더불어 일할 수밖 에 없다. 동네 안에서 일어난 일은 아무리 작은 일이어도 곧장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만다. 누구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다든가 하는 말이 내려온 유래다.
이렇게 농촌의 투명성은 좋게도 나쁘게도 작용한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의 익명성 속에 스며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정과 딱 반대의 현상이라고 보면 된다.
중요한 것은, 농촌은 함께 사는 곳이라는 깨우침이다. 가끔씩 사람들에게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내 자신속깊이 침잠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농촌의 자연과 사람들은 그 모든 것까지도 포용해 준다. 서로를 위하고 성심껏 일하는 훌륭한 분들이 주위에 많기 때문에 삶이 안전하고 행복하다고 느낀다. 시골에 있다 보면 풀뿌리 민주주의가 이곳 농촌에서부터 뿌리 내려 번져가는 것이 보인다. 자랑스러워요. 여러분들! (2018년 2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