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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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동부신문
우선 부처님께서 왜 인생은 고통이라고 하셨던 것인지, 그 진실한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즉 부처님께서 인생은 몽땅 고통스럽기만 한 것이니 그런 줄 알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 만물의 세 가지 특징을 ‘삼법인(三法印)’으로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법구경’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일체행무상(一切行無常)
여혜소관찰(如慧所觀察)
약능각차고(若能覺此苦)
행도정기적(行道淨其跡)
‘모든 것은 덧없다’고 지혜의 눈으로 이 이치를 볼 때, 괴로움을 싫어하는 생각이 일어난다. 이것이 청정(淸淨)에 이르는 길이다.
일체중행고(一切衆行苦)
여혜지소견(如慧之所見)
약능각차고(若能覺此苦)
행도정기적(行道淨其跡)
‘모든 것은 괴로움이다’고 지혜의 눈으로 이 이치를 볼 때, 괴로움을 싫어하는 생각이 일어난다. 이것이 청정에 이르는 길이다.
일체행무아(一切行無我)
여혜지소견(如慧之所見)
약능각차고(若能覺此苦)
행도정기적(行道淨其跡)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고 지혜의 눈으로 이 이치를 볼 때, 괴로움을 싫어하는 생각이 일어난다. 이것이 청정에 이르는 길이다.”
즉 모든 사물을 지혜의 눈으로 본다면 고통을 덜고 깨끗함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흡족하게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어리석음을 깨닫고 야망을 버려야 합니다. ‘법구경’ 제1에 있는 예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나열기 국 남쪽 성에서 2백리 쯤 떨어진 곳에 큰 산이 있었습니다. 남쪽으로 가려면 언제나 이 산을 지나가야만 하였는데, 이 산은 높고 가파른 곳이라 다니기가 험난할 뿐만 아니라, 사납고 포악한 5백 명의 강도떼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강도들은 산을 지나는 행인들을 붙잡아 재물을 빼앗고 심지어는 목숨을 해치는 일도 많았습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며 무역을 하는 상인들은 이런 잔인한 강도 때문에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러나 달리 갈 수 있는 길이 없으므로 국왕에게 그 사정을 호소했습니다. 국왕은 군사를 보내 강도를 잡으려 했으나, 험난한 산악지리에 익숙한 강도들의 출몰을 짐작조차 할 수 없어 번번이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때 부처님은 많은 사람들이 이 강도 때문에 해를 입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셨습니다. 또 강도의 무리들이 사람을 해치는 일로 업을 삼아 악업만 더할 뿐 나락으로 빠져드는 하루살이와 같은 생활을 하는 일이 있어도 올바른 법을 볼 수 없으며, 귀가 있어도 참다운 진리의 가르침을 듣지 못하니 부처님 보시기에는 귀머거리나 장님과 다를 바 없이 가엾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
‘강도들은 참으로 불쌍하구나. 마치 깊은 연못에 가라앉은 돌처럼 죄업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자들이다. 내가 친히 가서 그들을 구제하리라.’
이렇게 생각하신 부처님은 아름다운 세속의 옷차림을 한 남자의 모습으로 변해 길을 나섰습니다. 말을 타고 긴 칼을 차고 한 손에는 활을 들고 산을 오르는 부처님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먼 길을 떠나는 상인의 차림이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