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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일반

[이명지 에세이] 장미여관의 추억

경북동부신문 기자 입력 2015.06.04 14:25 수정 2015.06.30 14:25

이 명 지/수필가

ⓒ 경북동부신문
내 유년의 기억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면 단연 ‘장미여관’이다. 사람은 누구나 기억 속의 힐링 공간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세상살이가 팍팍하고 어딘가로 숨고 싶을 때, 위로받고 싶을 때, 오두마니 들어앉아 충전시킬 수 있는 곳, 내게 그 곳은 장미여관이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엄마 손에 이끌려 간 곳이었다. 성당에서 영세를 받기 위해 교리 공부를 하라고 데려다준 곳이다. 고도리 우리 집과는 걸어서 30여분 신작로 창하에 있는 장미여관집에 신학생 아들이 있었는데 방학을 맞아 내려와 인근 초등학생 대여섯 명을 모아 교리공부를 시켜준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 교리공부가 싫었다. 무슨 소린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성경말씀도 그렇고, 숨 막히게 엄숙한 성당분위기는 더욱 싫었다. 그럼에도 가끔 엄마 치마꼬리를 잡고 읍내에 있는 영천성당엘 따라다닌 것은 드문드문 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엄마가 정류장에서 사 주는 찐빵을 얻어먹는 재미 때문이었다. 순전히 그것뿐이었다. 그것도 이젠 안 할 참이었다. 버스비를 아끼려고 엄마가 4학년이나 된 나를 아직 학교에 입학 전이라고 차장언니에게 자꾸 우겨대는 것도 민망하고. 그런데 영세를 받을 교리공부라니...... 팔려가는 소처럼 등 떠밀려 들어간 장미여관, 그곳에는 뜻밖에도 얼굴이 하얗고 키가 훤칠한 동화 속 왕자님이 그윽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는 게 아닌가! 유리 구두를 들고 신데렐라를 찾아다니던 왕자님 같이 생긴 신학생 선생님이. 게다가 울타리에 온통 넝쿨장미가 올려져있는 그 곳은 여관이라기 보단 마치 비밀의 화원처럼 몽환적이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엄마가 재촉하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나 열심히 장미여관으로 교리공부를 하러 다녔다. 주인이자 신학생 선생님의 어머니이신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멸치국수 맛 또한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기막힌 맛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시골뜨기처럼 보이지 않게 이쁘게 먹으려고 국수가닥을 한 올 한 올 세듯 먹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내가 국수를 좋아하지 않는 줄 알고 양을 덜어주랴? 하셔서 깜짝 놀라 국수그릇을 끌어안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 해 여름은 내 유년의 기억 중 가장 아름답고 풍성하고 행복한 시절이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방학숙제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각성하기 전까지만. 지금도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유년시절 기억 속 장미여관으로 간다. 흙마당에 두엄더미가 있던 우리 집과는 달리 깨끗한 시멘트마당과 장미울타리, 농사지은 밀로 뽑은 거칠고 누런 국수가 아닌 가늘고 흰 소면, 기도문을 잘 외었을 때마다 신학생 선생님이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길고 하얀 손가락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그 아뜩하고 달큰한 기분까지 박제되어 있는 그 곳으로 퇴행한다. 어른노릇을 하며 세월의 질곡을 힘겹게 넘던 어느 날 까마득히 잊고 살던 성당에 내 발로 찾아가 펑펑 회한의 눈물을 쏟아낼 때, 나는 마치 장미여관으로 돌아온 듯 처음으로 성당이 평화로웠다. 장미여관은 내 기억의 유토피아다. 분노가 사라지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행복한 기분이 든다. 굴곡진 세월을 돌아 돌아서 결국은 가 닿는 어머니의 품 같은 피안의 지대. 내 기억 속 장미여관에는 아직도 그 신학생 선생님이 “괜찮다 다 괜찮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계신다. 나는 누구에게 그런 기억이 되어주며 살아가고 있는가? --------------------------- 이명지(李明枝) ● 경북 영천 출생 ● 동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문학석사) ● <갤러리 오차드> 관장 ● 사단법인 창작수필문인회장 ● 한국문인협회 이사 ● 국제펜클럽 회원 ● 문학의집서울 회원 ● 저 서 : 수필집「중년으로 살아내기」,「진달래술 익을 때 만나고 싶은 사람」외 논문집<전혜린 수필연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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