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경북동부신문 |
진짜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사랑을 지속 시키는 것이 사랑을 얻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서점가에는 온갖 스킬들을 적은 책들이 많지만 사랑을 지속시키는 방법을 적은 책은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해피엔딩도 대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신데렐라나 백설공주도 근사한 왕자님을 만나 사랑을 이뤘다는 것으로 결말지어져 있지 그들이 아들 딸 낳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애틋하게 사랑하며 살았는지는 그저 상상에 맡겨져 있을 뿐이다.
사랑은 불완전한 마음의 존재다. 언제 상할지 모르는 펄펄한 생물이다. 달콤할수록 치명적이다.
움켜쥘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허무한 심상이다. 이뤘지만 이룬 것이 아니고, 가졌지만 가진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외면한다고 오지 않는 것도 아닌, 어떤 방부제도 항생제도 없는 영원한 면역결핍이다.
그래서 아름답고 그래서 불안하다. 지키는 것이 초조하다. 변하지 않은 사랑은 이루지 못한 사랑뿐이라는 말도 있다. 유안진 시인의 시 중에 ‘옛날 애인’ 이라는 시가 있다.
봤을까?
날 알아봤을까?”
중년이 된 후 옛 애인과 우연히 스쳐 지난 후 썼다는 짧은 시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는 두근거림이 환상이 슨 채로 박제되어있다. 그래서 옛사랑은 다시 만나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일 게다.
사랑에 빠지는 일은 참 근사한 일이다. 사람은 마음속에 정열이 불타고 있을 때 가장 반짝거리고 행복하기 때문에. 사랑은 언 땅을 녹이는 봄바람 같아서 메마른 대지를 포실하게 부풀려 놓는다.
어떤 씨앗도 싹 틔우고 꽃 피울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갖게 한다. 그런데 왜 열화 같던 사랑도 이뤄진 후에는 헐렁할까? 세익스피어도 그랬지 않은가.
내들이 사랑을 구할 때는 봄이지만 결혼을 하고나면 겨울이라고. 바람을 피우는 이유 중에는 지속적인 긴장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것도 있단다. 도대체 그 달달한 긴장감을 영원히 유지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정말로 잃어버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느끼는 감각인 것 같다. 얻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뎌지는 것이다. 젊음도 사랑을 유지하는 영원한 처방이 못 되고 결혼이라는 제도도 마음을 묶어두기엔 한계가 있다.
차라리 한 걸음 물러서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설렘을 지키는 방편은 아닐까? 모든 아름다움에는 거리가 필요하다. 물러서서 봐야 더 많이 볼 수 있다. 너무 가까우면 집착이 된다. 거리는 초연함에서 나온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서로 다름을 존중하는 데서 나온다. 존중이 존경이 될 수 있을 때 더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죽을 것 같은 이별도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하면 그저 시절인연이려니 다독여진다. 떠날 사랑이면 보내면 된다. 사랑은 다시 찾아온다. 안 찾아오면 내가 찾으면 된다.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도 사랑 받는 것만큼이나 행복할 수 있으므로.
산들바람에 마음이 간질간질 해지는 계절이다. 이외수 님의 글귀가 다시금 새롭다. “온 천지에 꽃이 피어도 내 마음에 꽃이 피지 않으면 진정한 봄은 아닌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