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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일반

[이명지 에세이] 이별 연습생

경북동부신문 기자 입력 2015.06.11 14:25 수정 2015.06.30 14:25

ⓒ 경북동부신문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다. 갱년기라는 게 나한테는 안 올 줄 알았다. 이 무슨 자신감인가 싶기도 했지만 어릴 적 사춘기도 봄비같이 지나갔고 지금 나의 건강은 동년배들에 비해 탁월하다고 믿었다. 얼마 전 지방에 세미나를 갔다가 안부를 안 챙기는 아들과 딸에게 분노가 폭발하면서 이별선언에 가까운 문자를 날렸다. “이제 나를 찾지 마라! 너희들에겐 더 이상 내가 필요 없는 것 같구나!” 나란 존재가 참으로 쓸모없고 가치 없게 느껴지고 인생이 허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음날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거의 부동자세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폭탄문자 이후 아이들은 자신들의 무신경을 뼈저리게 반성한다는 문자를 수도 없이 했지만 나는 삐친 아이처럼 침묵함으로서 아직도 내 노여움이 시퍼렇다는 걸 시위했다. 이들은 엄마가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여 저녁밥상까지 차려두었다. 나는 어느새 강짜 놓는 엄마가 되어있었다. 천천히 밥상 앞에 앉았다. 내가 왜 이런지를 설명하려는 참이다. 그런데 왜 하려는 말은 안 나오고 가슴에서 자꾸만 헛기침 같은 울음만 복받치는가. 나는 누구보다 멋있는 엄마이고 싶었다. 강요하거나 압박하기보다는 자율 속에 책임을 물으며 홀로서기를 가르쳐왔고 아이들도 그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지만 각자 참으로 독립적이고 자유로웠다. 그런데 느닷없는 엄마의 반란에 혼란스러운 쪽은 나도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들어 나는 부쩍 고독하다고 느꼈다. 살아온 날들이 허무하고 앞으로 남은 날들에 대한 어떤 설렘도 일지 않았다. 밤은 길고 잠은 짧았다. 피로가 종일 나를 짓누르고 몸은 타임이 고장 난 분수대처럼 시도 때도 없이 식은땀이 내뿜었다. 퇴근 후면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TV리모컨만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아이들과 대화하는 일도 다 귀찮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심드렁하고 무의미했다. 체중은 급격하게 불어나고 열정은 손바닥의 모래알처럼 소실되어 살아 움직이나 죽은 것과 같은 심정이었다. 이렇게 파장으로 처박히는구나 싶어 불안했다. 그러나 아무도 나의 고통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밥상 앞에 죄인처럼 앉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너희들을 나무라고 싶은 게 아니다 그냥 내가 이렇다는 걸 말하려는 거다. 사춘기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통과의례라면, 갱년기는 아마도 어른에서 다시 아이로 가는 과정인가보다. 노인이 되면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는 걸 이제 이해하겠구나. 나는 지금 갱년기라는 폭풍우 속을 휘청이며 걸어가고 있다. 그래 마음 부림이 내 뜻대로 되지가 않는구나.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들도 섭섭하기 이를 데 없고 내 인생이 쓰러져 누운 나무 등걸 같이 무기력해서 나는 슬프다. 희들의 도움이 필요하구나. 이제 너희가 나의 보호자가 좀 되어다오! 치받치는 울음을 누르느라 자꾸만 킁킁 대는 어미를 보면서 아이들도 울고 있었다. 갱년기更年期, 누구에게나 일생에서 허망하고 쓸쓸한 터널이 있다면 이 시기가 아닐까싶다. 근데 왜 굳이 갱년기라 했을까? 갱更은 다시 또는 새로워지다는 뜻이다. 후반기 인생 계획을 새로 짜라는 지혜로움에서 비롯되었을까? 홀로서기는 자녀들의 몫만은 아닌가보다. 사람이 익숙한 것을 바꾸는 일은 쉽지가않다. 그래서 경종을 울려주는 자연의 섭리일까? 이제 나도 이별연습을 할 때가 되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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