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오피니언 연재·소설

[연재소설] 고깔을 쓴다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입력 2026.05.13 09:57 수정 2026.05.13 09:59

한 관 식 작가

ⓒ 경북동부신문
말똥구리(21)
지네 잡이를 업으로 하는 우태는 늦은 봄이면 제법 큰 호리병을 옆구리에 차고 보현산 능선을 이 잡듯 뒤지며 다녔다. 두마국(國)에서 유일하게 약효빨이 있는 지네 잡이로 명성이 자자하여, 관절염과 신경통에 효험을 보기위해 사방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태의 지네는 혐오스럽고 징그러웠기에 그만큼 성숙되고 살이 오른 왕지네만을 취급했다. 지네를 백숙에 넣어 먹는 것은 민간요법으로 전해지긴 하지만 안전성과 효과가 검증된 것은 아니었다. 
허지만 특효라는 믿음이, 지네가 가진 독성 물질을 말리고 끓인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보장하기 어렵지만 다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머리와 꼬리를 제거하더라도 독 성분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섭취는 권장되지 않았지만, 지네의 독이 치료 효과가 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지네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게 번져갔다. 하지만 이런 지네를 잡는 시기는 단 늦봄, 한 달이었다. 나무뿌리며 흙속이며 돌틈 사이에 숨어 지내는데 산란기가 되는 늦은 봄이면 땅 위로 올라왔다. 
이때를 놓치면 땅 속으로 숨거나 보이지 않는 곳으로 흩어지는 지네를 잡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곡괭이 하나로 지네를 찾아 나선 우태는 주로 습하고 어두운 능선을 파헤치기도 하고, 숲으로 들어가 흙과 낙엽과 이끼와 같은 축축한 환경에 곡괭이질을 퍼붓기도 했다. 밤에 활동하는 특성상, 쉬고 있는 지네를 낮에 공략하는 것이 경험에서 얻어진 결과였다. 호리병 벽면을 긁는 소리가 요란하다고 생각되면 한껏 찼다는 생각에, 하루해가 서산에 덜컥 걸려있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오지게 물든 서산을 따라 발길을 옮기는 자신의 몸뚱어리는 피곤에 쩐 무게로 다가왔다.
야생마들의 되바라진 울음이 가득한 곰내재가 얼마 떨어지지 곳에 모습을 드러내면, 하산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익히 몸으로 터득하고 있었다. 유난히 붉은 서산 탓일까. 방향을 잡은 첫행보가 삐꺽 한다싶더니 잣나무군락으로 빠져 들어 곰내재와 멀어졌다고 순간 깨달았다. 몇 마리 더 잡는데 정신이 팔려 하산시각을 놓쳐버린 것이다. 산새(山勢)가 험할수록 일정한 시각에 입산과 하산을 엄격하게 지켜주는 것이, 길을 잃지 않는 첫 번째라는 것을 뒤늦게 인지한 우태의 마음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는 심정으로 급선회하면서, 원망스런 눈으로 서산에 눈길이 닿았다. 
노을은 맥을 못 추고 어둠에 항복해있었다. 젊은 날에, 몇 차례 숨이 멎은 산새를 훑어 내려온 적이 있었지만 이토록 절절히 오리무중의 발걸음은 처음이었다. 거기다가 허기진 범의 울음이 진동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미 길을 잃고 헤매는 처지에 전력질주로 하산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산을 타는 심마니 이상으로 허기진 범의 울음을 골라내는데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는 지네 잡이 우태이지 않는가.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범은 우태의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허기진 뱃속을 스스로 달랬을 것이다. 자신의 영역에서 활개 치는 싱싱한 먹잇감을 향해 부드럽지만 묵직한 발걸음으로 전진했을 것이다. 
맞닥뜨린 범을 향해 최후의 일격까지 싸울 수 있는 무기는 오직 곡괭이 뿐이라고 받아들였다. 우태의 허리춤에 찬, 호리병속을 가득 채운 왕지네도 혹시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씁쓰레 웃음을 지었지만 시시각각으로 느껴지는 공포는 목을 죄여왔다. 분명 압도하는 거구가 어둠속에서 쑥 빠져나와 정면에 등장해 있다는 것을 몸 소리치게 우태는 받아들였다. 모시적삼 바지에 오줌을 지리면서 이미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승부는 간단하게 끝나있었다. 곡괭이 자루인지 곡괭이 대가리인지 손을 놓은 우태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범은 그 순간을 즐기는지 천천히 다가왔다. 짙은 비린내와 거친 숨소리도 따라 붙고 있었다. -계속



저작권자 경북동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