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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일반
자극적인 감각의 쾌락이 아닌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의 평화를 열반이라 합니다. 집착에서 벗어나 번뇌의 불을 끔으로써 괴로움에서 온전히 벗어난 상태이지요. 지속 가능한 행복, 이것이 멸성제(滅聖諦)입니다. 이러한 온전한 행복을 성취하는 것이 불법 수행자의 목표입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른 이를 아르하트(Arhat), 아라한(阿羅漢)이라고 부르는데, 부처님을 부르는 열 가지 명호 중 하나인 응공(應供)으로 의역했습니다. ‘진리에 상응한 이로서 능히 인간과 천인의 공양을 받을만한 이’라는 뜻이죠. 상좌부 불교는 ‘아라한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을 따라 깨달았으므로 더 이상 번뇌로 시달리지 않고 윤회하지 않으며 그 깨달음은 부처와 다를 바 없으나, 그때까지 쌓은 공덕의 깊이가 달라 깨달음을 얻은 뒤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는 힘이 부처만 못하다.’ 라고 해석합니다. 그렇게 아라한과 부처님을 구분 짓습니다. 대승불교 계통인 우리나라에서 불교에서도 이 상좌부 불교의 해석을 용인하는 듯합니다. 거의 대부분 산사(山寺)에서 나한전이나 독성각에 아라한을 모시고 있으며, 경북 영천의 국보인 거조사 영산전에는 오백나한이라 하여 경전 상 아라한과를 증득한 526분의 아라한 상(像)을 그 이름과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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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동부신문
수행자는 이 멸성제를 목표로 삼아 죽을 때까지 공부합니다. 만약 고오타마 붓다만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고 그 후 아무도 없었다면 희망을 품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오타마 붓다 당시에 이미 500명이 넘는 아라한이 출현했고, 불멸 후 2,569년 동안 수많은 아라한이 온전한 행복을 누렸을 것입니다. 나 또한 죽기 전에 그 아라한의 경지를 체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불교 공부의 목표이고 수행의 끈을 놓지 않은 이에게는 삶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林龍相 義士 略歷(임용상의사 약력)⑤
왜병은 거의 쓰러지고 나머지는 도주하였다 우리는 분파소를 소각시키고 그날 밤에 울산 등지로 이동하다 울산에서 다시 언양으로 돌아와서 언양에서 영산 밀양을 경유하여 칠원에 들어갔다가 왜적에게 한번 패전을 당하고 경유하여 진주에 들어서서 남강지대에서 四五個月(사오개월) 광음을 흘려보내면서 왜적들을 더불고 악전고투를 계속하였다 그렇게하는 동안에 우리는 모든 경제궁핍에 따라서 점점 약하게 되고 그 반면에 우리를 추격하는 왜적들은 점점 강성하게 되는지라 하는 수 없어 의령 초개 지방으로 후퇴하여 창녕을 거쳐 다시 청도 땅에 들어섰다
여기서 지나간 날에 우리를 보호하여주던 저 운문산을 바라보니 울창한 기상과 장엄한 풍경은 지금도 우리를 환영하는 것 같은데 그 속에서 울려나오는 호흡소리가 옛날과 달라졌다 그때에 우리가 점령하고 있던 동리들은 지금은 왜병들의 소굴이 되었고 우리가 내왕하던 길목은 왜병들의 인후문이 되었다 세태 변천한 것을 슬퍼하는 것은 곧 이 나라가 멸망되는 것을 통고하는 것이다 운문산아 변하지 말라 이 나라를 찾은 후에 다시 만나보자 우리 일행은 이곳을 하직하고 경주 영일 지방을 경유하여 북동대를 바라보고 가더니 청하읍을 지나다가 사방에 총소리가 일어나고 우리는 오도가도 못하는 입장에서 더군다나 약탄마저 떨어져서 대항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무한한 참패를 당하고 公(공)은 이 자리에서 피금되었다. 왜적들의 관헌인 청하분파소로부터 시작되는 심문을 중간여러 고을을 모두 겪고 대구재판소에 들어와서 三年(삼년)징역을 언도받고 복역하다가 一年(일년)을 지나고 석방되다 그때에 法庭(법정)에 被告(피고)된 姓名(성명)은 林炳五(임병오)라고 하였다[左(좌)에 判決書(판결서)를 添附(첨부)한다]
判決書(판결서)
慶尙北道 淸河郡 上沙洞에 居住 農業 林炳五 (中虎) 三十二年(경상북도 청하군 상사동에 거주 농업 임병오 (중호) 삼십이년)
右被告에 對한 暴動事件을 檢事 洪淳瑢의 立會下에 審理를 遂行하여 判決한 事가 左와 如함(우피고에 대한 폭동사건을 검사 홍순용의 입회하에 심리를 수행하여 판결한 사가 좌와 여함)
主文(주문) 被告 林炳五를 懲役三年에 處함(피고 임병오를 징역삼년에 처함)
理由(이유) 右 被告는 第一 康熙元年 陰曆 九月 三十日 頃에 暴動을 行할 目的으로서 暴徒首魁 鄭左兼의 部下에 入하여 鄭左兼의 指揮를 받어 同黨數百人과 共히 慶尙北道 興海郡 地方에 徘徊하여 該地方을 騷擾케하고 第二 同陰曆 十一月 二十日 頃에 同目的으로서 李石伊의 部下에 加入하여 其 指揮를 받고 同黨三十八人과 共히 慶尙南道 蔚山地方을 徘徊하여 該地方을 騷擾케한 者라 以上 事實은 盧山義英 등 逮捕告發書와 被告에 對한 警察署와 檢査廷訊問調書와 當公廷陳供自白에 의하여 證憑이 充分함(우 피고는 제일 강희원년 음력 구월삼십일 경에 폭동을 행할 목적으로서 폭도수괴 정좌겸의 부하에 입하여 정좌겸의 지휘를 받어 동당수백인과 공히 경상북도 흥해군 지방에 배회하여 해지방을 소요케하고 제이 동음력 십일월 이십일경에 동목적으로서 이석이의 부하에 가입하여 기 지휘를 받고 동당삼십팔인과 공히 경상남도 울산지방을 배회하여 해지방을 소요케한 자라 이상 사실은 노산의영 등 체포고발서와 피고에 대한 경찰서와 검사정신문조서와 당공정진공자백에 의하여 증빙이 충분함)
此를 法律에 照하니 被告의 所爲는 總히 刑法大全 第六百七十七條로 同第三十五條에 該當하나 原諒할만한 情狀이 有하기로 第百二十五條에 依하여 本律에 二等을 輕減하여 二罪俱發됨으로서 同法 第百二十九條에 依하여 第一의 罪에 科할만한 刑에 從하여 處斷할 事로함 仍하여 主文과 如히 判決함 康熙三年 九月三十日 大丘地方裁判所刑事部 裁判長 判事 森島彌四郞 印 判事 五味逸平 印 判事 吳容 印 (차를 법률에 조하니 피고의 소위는 총히 형법대전 제육백칠십칠조로 동제삼십오조에 해당하나 원량할만한 정상이 유하기로 제백이십오조에 의하여 본률에 이등을 경감하여 이죄구발됨으로서 동법 제백이십구조에 의하여 제일의 죄에 과할만한 형에 종하여 처단할 사로함 잉하여 주문과 여히 판결함 강희삼년 구월삼십일 대구지방재판소형사부 재판장 판사 삼도이사랑 인 판사 오미일평 인 판사 오용묵 인)
엄동혹한에 백설이 삼라만상의 빛을 다 변하도록 하여도 낙락장송이 낙엽될 이치는 없다 독립운동을 하던 林中虎公(임중호공)이 나라를 빼앗기고 체형을 받았을지라도 그 몸에 실끝 만큼이라도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에는 일편단심이 변할 수 없다 고향 땅 청송에 돌아와서 또 옛날의 동지들을 찾아서 산남의진 근본정신을 다시 살리고저 하였다 庚戌年(경술년) 늦은 봄에 靑松郡(청송군) 西南(서남)간인 보현산 느름밭에 山南義陣(산남의진)의 깃발이 펄펄 날린다 南江(남강) 지대에서 실패를 본 운문산 유격대들이 여러 곳으로 방황하다가 옛 지휘자 林中虎公(임중호공)을 여기에서 다시 大將(대장)으로 추대하고 靑松(청송)동부 徐鍾洛(서종락) 陣(진)과 서부 南錫球(남석구) 陣(진)에 통기하여 서로 연락을 취하고 행동을 같이하여 五月(오월) 중순에 청송군에 주둔하는 왜병 분파소를 습격하여 전과를 올리었다 왜병들은 大邱(대구)에 연락하여 대구에서 수비대 三百(삼백)여명이 청송으로 응원되는지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