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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연재·소설

[풍수연재] 정무공 오정방 고택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입력 2026.05.13 10:00 수정 2026.05.13 10:02

양 삼 열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원 교수 풍수지리학 박사

ⓒ 경북동부신문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마을에 가면 조선 중기에 건립된 정무공 오정방 고택이 있다. 오정방(152~1625)은 본관이 해주로 시조 오인유(吳仁裕)의 14세 손이며 해주오씨 정무공파(貞武公派)의 파 시조다. 덕봉마을은 해주오씨 집성촌으로 오정방 고택은 현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5호로 자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 집은 조선 중종 10년(1515)경에 처음 건립되어 병마절도사 오정방(1552~1625), 증 좌찬성 오사겸(1573~1627), 경상도관찰사 오숙(1592~1634) 형제와 증 영의정 오두인(1624~1689) 등 해주오씨 명현들을 배출한 유서 깊은 집이다. 초기에는 이곳에서 약 100m 떨어진 252번지에 있었으나 효종 1년(1650)에 현재위치(246번지)로 이전하여 문중의 종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100칸이 넘는 큰 저택이였으나 당시 법으로 사가는 99칸을 넘길 수가 없어 일부를 헐었으며, 당호는 오정방의 호인 퇴전당(退全堂)으로 현판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다. 해주오씨들이 이 마을에 자리 잡게 된 연유가 있다. 지금부터 약 500여 년 전 1525년 당시 오정방의 증조부인 오현경과 조부 오경운이 역모 사건으로 누명을 쓰고 경상도로 귀양을 갔다. 얼마 후 그곳에서 전염병으로 사망을 하였으나 통행이 차단되어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듬해 봄에 유골을 찾아왔다. 부인은 시신을 찾아오는 길에 한 스님을 만났는데 그 스님께서 부인의 사정을 듣고는 친정 마을인 덕봉리에 묘자리와 집터를 잡아주었고, 그 뒤로부터 집안에 발복이 시작됐다고 한다. 부인의 친정 마을은 원래는 풍산심씨들의 집성촌이였으나 차차 해주오씨들이 번성하면서 심씨들은 사라지고 해주오씨들의 집성촌이 되었다. 장남 오수천은 충무위 부원군으로 호조판서에 추증되고 차남 오수억은 병조판서, 손자 오정방은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이후에도 계속 번성하여 이 마을에서만 문과급제자 20명, 무과급제 117명, 시호를 받은 사람이 9명, 공신 1명, 음직으로 벼슬에 나간 사람은 148명이나 된다고 하였다.
이곳의 산세는 한남정맥 문수봉(404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이 고삼면의 쌍령산(502m), 봉황산(259.3m) 그리고 원곡면의 천덕산(335.5m)을 지나 고성산(298.2m)을 일으켜 이 마을의 주산이 되었다. 고택은 주산에서 좌측으로 뻗어 나온 바리봉과 우측으로 뻗어 나온 대이산 사이에 있어 안온한 장풍국을 이루어주는 곳이다. 주산은 토형체의 일(一)자 문성사로 문인들이 많이 배출될 것을 미리 예견해주고 있다. 이 마을의 주요 건물인 고택과 덕봉서원은 둘 다 그 모양이 둥그스름한 금형의 무곡봉을 배산(背山)으로 하였고, 앞쪽으로 보이는 안산은 산 정상이 뾰족한 문필봉이다. 풍수에서는 지령인걸(地靈人傑)이라 하여 훌륭한 인물은 주변 산천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다고 하였으니 이 마을에 많은 문·무관의 배출은 주변 산세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곳의 수세는 마을 뒤 용·호 자락에서 흘러나온 물들이 마을 회관 앞에 모여 마을 앞으로 흐르는 한천에 흘러 들어간다. 그리고 고택 아래에는 오래된 우물터가 하나 있는데, 풍수에서는 이러한 물을 진응수(眞應水)라 하고 뒤쪽에 지기가 왕성해 기운이 지상으로 분출하여 나온 물로 보고 그 안(뒤)쪽을 대 길지의 증거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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