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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새벽 교차로, 그리고 퇴근길 노을이 깔리는 길목마다 어김없이 허리를 굽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지만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상이 되어버린 풍경입니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시의원 각 선거구의 경선 후보가 확정되기까지, 그들중 누군가는 지난 2월부터 무려 석 달이 넘는 시간을 길 위에서 보냈습니다. 정치가 일상의 중심으로 들어와 민주주의의 맥박을 뛰게 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기는하나, 그 이면에 드리워진 ‘너무 긴 선거’가 만들어내는 개인과 지역의 소모를 지켜보는 마음이 자못 무겁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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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동부신문
기초의원 출마자들은 거대 담론을 논하는 중앙 정치인이 아닙니다. 주민의 생업 현장에서 발로 뛰며 생활의 매듭을 풀고 조이는 ‘생활 정치인’이죠. 하지만 지금의 선거 구조는 이들에게 가혹할 만큼 긴 호흡을 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출마 예정자의 고백이 뼈아프네요. “선거를 준비하려면 최소 반년은 일을 접어야 합니다. 생업과 병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가게 문을 닫은 자영업자, 농번기에 논밭을 비워둔 농민 출마자들의 등 뒤에는 고스란히 개인과 가족이 짊어져야 할 경제적 위험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습니다.
이러한 ‘투자’는 넓은 의미에서 일종의 사회적 비용입니다. 지역을 위해 일하겠다는 인재들이 정작 지역 경제의 생산 라인에서 이탈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특히 농번기와 겹친 선거 일정은 농촌 지역의 근간을 흔들기도 합니다. 후보가 되지 못했을 때 감당해야 할 낭패감은 차치하더라도, 당선 이후 그들이 보낸 ‘보이지 않는 비용’에 대한 보상 심리가 어디로 향할지 생각하면 우려가 더욱 깊어집니다. 전국적으로 한 명이 아니라 다수라고 치면 손실이 엄청납니다.
우리는 최근 열린 전 법무부 장관과 법제처장의 결심 공판에서 검사의 논고문을 통해 한때 기대를 모았던 선배들이 권력의 단맛에 취해 초심을 잃고 무너지는 과정을 목격했습니다. 정재인 검사는 법무부 장관을 향해 “정의와 인권,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은 안중에 없었다”고 일갈하며 징역 20년을 구형했습니다. 35년 선배의 이중성을 단죄한 6년 차 검사의 당찬 논고에 대중이 열광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권력의 정점에 선 자들이 초심을 잃고 ‘정권의 돌격대’가 되어버린 현실에 대한 분노, 그리고 “지금 마음 그대로 정의로움을 지켜달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 투영된 것입니다.
공직으로 치면 검찰 조직이나 지역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시작은 모두 ‘공익의 대표자’가 되겠다는 선서일 것입니다. 그들이 길 위에서 쏟아붓고 오랜 시간 책상앞에서 두꺼운 책과 마주한 그 눈물겨운 투입 비용이 당선 후 ‘권력의 사유화’나 ‘본전 뽑기’식 행정 또는 의정 활동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지역 공동체에 대한 또 다른 배신 아니겠습니까.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허리를 숙이는 공직선거 후보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바친 그 고단한 시간의 목적지는 어디인가를. 또 지금 그 간절함이 훗날 우리 지역과 지방의회의 고압적인 자세나 이권 개입으로 변질되지 않을 자신은 있는가를 묻습니다. 정재인 검사의 논고문에 달린 “초심을 잃지 말라”는 댓글은 비단 검찰만을 향한 것이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공들인 시간이 길고 고통스러웠던 만큼, 그 결실인 ‘행정’ 또는 ‘의정 활동’은 더욱 투명하고 뜨겁기를 바랍니다. 길 위에서 보낸 수많은 새벽과 밤의 무게를 꼭 기억하길 바랍니다. 부디 그 ‘초심’이 앞서 말한 고압적 자세나 이권 개입으로 연결되지 않기를 우리 신문 독자들과 함께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 자세야말로 당신들이 지역 주민에게 약속한 가장 값진 담보여야 합니다. 주민들은 지금 후보자들의 허리 숙인 뒷모습을 보며, 그 마음의 유통기한이 4년 내내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