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뉴스
문화
ⓒ 경북동부신문
영천역사박물관에 추억어린 부채 2점이 입수되었다. 1950~60년대의 흔적이 남겨져 있는 영천 근대사 자료로 평인의원 신축 6주년기념으로 제작된 것으로 “내과, 외과, 산부인과, X선과(현재의 영상의학과)를 중심으로 진료를 광고하고 있다.” 내용이 부채의 뒷면에 기록되어 있다. ![]()
![]()
ⓒ 경북동부신문
또 한 점의 부채는 “외과 일반외과 내과, 내장, 골격, 수술을 전문으로 진료하고 있음을 알리고 산부인과, X광선 장치, 혈액준비, 구급자동차 비치하고 운영하고 있다.” 광고하고 있다. “수시 대소 수술 시행, 수술실 입원실 완비가 되어 있다.” 인쇄된 자료이다. 영천읍 남문통 전화 28번이다.
영천 남문통(南門通)의 ‘평인의원(平仁醫院)’은 과거 영천의 근대 의료 역사와 지역민의 삶을 연결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남문통’은 조선시대 영천읍성의 남문(南門)이 있던 옛 지명 조밭골에서 아래로 약 100M 정도 조양각 쪽으로 올라와 있는 현재 영천교(영천-청송간 다리) 부근에 자리한다.
일제강점기 1930년대 초 대구~영천~청송~안동을 잇는 이른바 ‘3등 도로(신작로)가 만들어지면서 영천교가 가설되고 그 새로운 자리 그 주변 길 일대를 남문통이라 불렀다. 일제강점기 신작로가 닦이면서 영천의 가장 번화한 중심 상업 지구이자 근대 문물이 유입되는 통로 역할을 했다.
현재의 위치로는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영천시 창구동 일대에 해당하며, 평인의원 정보를 보면 ‘창구동 12’ 번지 일대에 의료기관(평인의원)의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시기 신작로 개통으로 영천 남문통과 영천 완산시장 방면은 경북 내륙 교통의 핵심 중심지가 되었다. 이 인프라가 바탕이 되었기에 해방 직후인 1946년, 남문통에 여러 진료 과목을 갖춘 대형 ‘평인의원’이 이 곳에 자리 잡고 인근 지역 환자까지 흡수할 수 있었다.
경상북도의사회 및 지역 의료계 임대·폐업 기록 등에 따르면, 영천 남문통의 평인의원은 1946년(해방 직후) 전후에 개원한 것으로 추적된다. 1950년대 초에 이르러 당시 내과 외과 산부인과 x선과를 운영했으며, 자매병원으로 고경면 단포동에 단포의원을 운영했던 것으로 광고 부채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2011년 말~2012년 초 평인의원이 건물 임대 및 폐업을 진행할 당시의 기록에 “지난 65년간 진료한 관계로 오래된 단골 고객이 많음”이라는 사료가 명시되어 있다. 이를 역산하면 1946년경 처음 문을 열고 영천 중심가에서 진료를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지방의 의원급 의료기관이 내과, 외과, 산부인과, X선과(영상의학과)를 모두 갖추었다는 것은 단순한 1차의원을 넘어, 당대 영천 지역에서 사실상 종합병원에 준하는 중추적인 의료 거점 역할을 수행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부채 하단에는 자매병원으로 ‘단포의원’을 함께 운영 배경에는 영천시 고경면 단포동(현 단포리)에 단포의원은 당시의 ‘무의촌(醫村) 해소’ 및 ‘의료 시혜 분점’이라는 근대 의료사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고경면 단포리는 영천읍내(남문통)에서 포항·안강 방면으로 나가는 길목이자, 고경면의 중심지였다. 영천 중심가에 오기 힘든 농촌 지역 주민들을 위해 교통 요충지인 단포에 자매병원을 설립한 것으로 보인다.
1950~1970년대에는 도심의 역량 있는 거점 의원이 의료 사각지대인 인근 면(面) 단위 지역에 분원 형태로 의사를 파견하거나 주 2~3회 출장 진료를 하는 ‘자매병원’ 시스템을 운영하곤 했다. 평인의원의 의료진(외과, 산부인과 등)과 인프라가 고경면 일대 주민들에게까지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영천시민신문 2015년 04월 07일자에 의하면 “이덕진 평인의원 원장이 향년 96세의 나이로지난 2일 저녁 별세했다.” 기사에 사진이 실려있다. “영천의 병원 1세대로서 병원 불모지인 영천에서 줄곧 의술을 베풀어 왔다.”고 실려있다.
현재 평인의원은 빈터만 남아있다. 지역의 나이 많은 사람 어르신네들의 추억이 남겨진 의원이 사라지고 돌아온 부채 2점이 그때 사라진 영천의 이야기로 남아 있다. 우리가 소중한 기억에 남겨두어야 할 영천에 잊혀져 가는 자산이 이것 뿐 이겠는가?ⓒ 경북동부신문